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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정몽구 고로 사랑 32년](끝) ‘한보철강’ 인수후 꿈 실현

하동 착공 직전 IMF사태로 좌절
한보철강 인수후 당진서 결실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조인식을 마친 정몽구 회장은 본격적인 제철소 건설 작업에 착수한다.

우선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등 제철소 건설을 지원할 12개 계열사 부사장·전무급 임원들로 구성된 그룹 차원의 ‘고로제철소 추진 특수팀’을 신설하고 현대엔지니어링 주관하에 해외업체에 용역을 줘 타당성을 검토했다. 동시에 직원들을 하동으로 파견했다. 부지 매입을 위해 지주들의 리스트를 확보하고 매입 금액도 산출했다. 당시 지주 조사를 맡았던 직원은 “구입자금만 8000억원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제 정 회장이 이 전무에게 했던 말처럼 ‘말뚝 박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일이 벌어졌다. 제철소 설계 도면은 물론이고 모형까지 다 만들어 놓은 1997년말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을 앞둔 1998년 2월 중순 어느날, 정몽구 회장은 특수팀장인 이 전무를 방으로 불렀다. 침통한 표정으로 정 회장은 무거운 입을 뗐다.

“외환위기 때문에 하동에 제철소 짓는게 힘들 것 같아. 다음 기회에 하지…”


이 전무는 “회장실을 걸어 나오면서 다리 힘이 풀렸다”는 말로 당시의 허탈함을 표현했다.


이것이 정 회장이 2년여에 걸쳐 혼신의 힘을 쏟았던 하동 프로젝트의 전말이다. 당시 모든 팀은 해체됐고 정 회장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 그토록 갈망했던 고로제철소 건설의 꿈은 기나긴 경제위기의 늪으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당시 창원에 있는 현대차 경남지역본부에서 보관하던 서명록 원본은 창고가 비좁고 곰팡이가 슬어 더 이상 보관할 수 없어 2003년 하동군청으로 이관됐다. 경남지역에서 캠페인을 주도했던 500여명의 활동가들은 ‘제철소 유치의 불씨를 남겨두자’는 취지로 산악회(청록)까지 조직했다. 이후 전·현직 하동군수가 현대제철 유치에 기대를 걸고 정월 초하루마다 하동 정씨 제각에 절을 올렸다는 웃지못할 일화까지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아직도 하동군민을 비롯한 경남도민들이 현대 제철소 유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만큼 당시의 프로젝트는 큰 가능성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몽구 회장 역시 아쉬움이 컸다. 2003년 국내에서 철강 원자재 품귀현상이 일자 “그 때 하동에 제철소를 지었다면 지금쯤 쇳물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지난 1997년 정 회장의 지시로 만든 경남 하동 갈사 ‘현대제철소’ 모형이 있었다. 이 모형은 정몽구 회장의 하동 프로젝트가 거의 실행 단계 직전까지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꿈꾸던 제철소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위쪽의 두 통은 고로 1·2기이고, 그 아래로 제강공장과 열연공장이 들어서 있다. 그밖에 폐기물처리장·폐수처리장을 비롯해 도로·철도 등도 눈에 띈다. 제철소 주변 폭 50m의 완충녹지대를 설치하는 등 친환경적으로 설계한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 모형은 계동사옥 내 정몽구 회장의 비선 조직인 특수팀 사무실에 보관돼 있다가 1998년 2월 하동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몽구 회장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끝내 철강 꿈을 이룬다.


강원산업·삼미특수강에 이어 2004년 포스코와의 경쟁 끝에 한보철강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정 회장의 과감한 인수가격 제시로 성사시킬 수 있었다. 2001년 포스코와 이른바 ‘핫코일 전쟁’을 치르면서 정 회장은 고로 제철소 건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보철강 인수후 울산보다 당진공장을 더 자주 방문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급기야 이곳을 기반으로 한 고로제철소 건설의 확신을 갖게 된다.


그는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충청남도는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 건설의 1단계로 승인한 당진 송산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승인했다. 옛 한보철강으로부터 인수한 당진공장에 일관제철소를 건립키로 하고 당진군 송산면 일대 96만평에 대한 산업단지 지정을 충청남도에 요청했다.


정 회장은 5조8400억원을 투자해 송산면 일대에 연산 400만t 규모의 고로 2기를 건설하기로 했다. 1호기 건설에 착공해 2010년 완공했으며, 2호기는 2008년 공사에 들어가 2011년 준공할 예정이다. 내년이면 현대제철은 세계 10위권 철강그룹으로 도약하게 된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루지 못한 세 가지 꿈이 있다. 통일을 위한 대북사업,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영, 그리고 고로 제철소를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제철의 꿈’은 아들의 몫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제 ‘자동차의 쌀’인 철강을 본격 생산하게 됐다. 모내기는 마쳤다. 이제 현대제철은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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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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