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100년 장흥법원 최초 판결은?
"피고안을 태형(笞刑) 30에 처한다."
전남 장흥과 강진의 법조 100년사(史)를 알기 쉽게 풀어 한 권의 책에 담아내 눈길을 끌고 있다.
장흥지원ㆍ지청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14일 오후 장흥군민회관에서 양 기관의 지난 100년사를 회고ㆍ기념하는 사료집 '흐르는 탐진강 세월을 보듬고'를 출간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 사료집은 461쪽 분량의 컬러판으로, 지난 한 세기간 지난 한 세기 동안 지방 법원, 검찰청의 역사를 '역사편', '사람편', '자료편'으로 나눠 발간됐다.
사료집의 표지디자인은 사법연수원 32기인 임수희 판사가, 축화(祝畵)와 권두시는 장흥 출신 동양화가 고완석씨와 시인 배홍배씨가 맡았고, 박국수 사법연수원장과 김한진 탐진장학회 이사장 등도 제료를 제공하는 등 발간작업에 힘을 보탰다.
올해도 100년을 맞은 장흥지원 개원 후 첫 형사판결은 1909년 12월 24일 '투구상인(鬪毆傷人)' 사건이다.
재판부는 장흥군 부동면(현 장흥읍)의 포목상 곽모씨가 같은해 10월 5일 술에 취해 군내면 시장 다리 인근을 배회하던 중 행인 김모씨의 얼굴을 때려 다치게 한 혐의를 적용해 태(苔) 30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 형식은 피고인의 주소, 직업, 성명, 나이를 먼저 기록하고 사건명에 이어 주문(主文)과 양형의 이유를 기술했다.
당시 장흥구재판소 통감부 판사는 야마오카 사다유키(山岡定行), 검사사무 취급 경무는 오이시 도라타로오(大石虎太郞)가 맡았으며, 명치(明治) 42년(1909년)이라는 연도와 제목, 기관 등도 표기해 당시의 문서 양식을 알 수 있다.
이 사료집에는 두 기관의 역활과 지역민들의 덕담, 역대 지원ㆍ지청장들의 소회, 법조계와 유관기관 고위 인사들의 릴레이 대담, 현직 판ㆍ검사들의 근무 뒷얘기와 최초의 민사판결문, 화해조서, 토지ㆍ건물 등기부 등도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장흥재판소는 1909년 7월 12일 조인된 '한국 사법 및 감옥의 사무위탁에 관한 한일각서'로 인해 대한제국의 재판소가 폐지된 뒤 사법권이 조선통감부 재판소로 이양된 같은해 11월 1일 문열었다.
해방 직후 전남 남부 지역 대부분을 관할했던 장흥지원ㆍ지청은 해남에 지원ㆍ지청이 들어선 뒤 장흥과 강진군만을 관할하게 돼 판사와 검사 수가 각각 3명 뿐인 '초미니 법원ㆍ검찰청'이 됐다.
이곳을 거쳐 간 법조인은 윤관 전 대법원장, 박국수 사법연수원장, 오세욱 전 광주지법원장, 김준규 검찰총장, 김태정 전 검찰총장, 김정길 전 법무장관 등이 있다.
최인규 장흥지원장은 "길이 흥하리라(長興)는 뜻을 좇아 앞으로도 친절하면서도 선진적인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고 주민과 더불어 지역의 유산과 공동체 문화를 가꾸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료집 출간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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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정선규 기자 su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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