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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규 회장 "그때는 고생도 즐거움이었다"

그룹 모태 S&Tc그룹 올해 창업 30주년 맞아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인 1979년 8월. 당시 27살이었던 최평규 사장은 S&T그룹의 모태가 된 삼영기계공업사(현 S&Tc)를 설립한다.

창업멤버 7명의 최 사장이 가장 나이가 어렸고, 직원들이 연로해 퇴사를 한 까닭에 현재 S&T그룹에는 창업멤버가 없다.


이제는 21개 국내외 계열사에, 임직원 3500여명, 자산 규모 2조5000억원의 중견 그룹 회장이 된 그는 최근 발간한 사보를 통해 "당시는 하루 수면시간이 많아야 2시간일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어. 비록 몸은 고되었지만 참 재미있게 살았고, 그때는 고생도 즐거움이었어"고 회고했다.

기술개발은 S&T 30년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최 회장은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전부 한국에서 처음 시도했던 것들이었지. 그래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 고객사들이 우리가 만드는 핀튜브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 품질도 최고였어. 우리의 기술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부심도 대단했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금도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레 현장에 직원들과 더 많이 가까웠다고 한다. 같이 일하다가 기계 옆에서 자고, 지게차 운전도 직접하고, 뭐든 직원들과 함께 했다. 미국에 갈 때도 사무직 사원이 아닌 기술직원들을 데려갔다. 더 많은 것을 배우라는 배려 차원이었다.


이사도 많이 다녔다. 인천 주안공장에서 창업하고, 부천으로 넘어와서 삼정동에서만 두 번 이사를 했다. 도당동 갔다가 김포 마전리, 금곡리를 거친 후 이천, 이어 1997년 지금의 창원시 팔용동 공장에 입주했다.


얼마나 절약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김포에 있을 당시 동네 고철장수가 다른 회사는 다 갔는데, 유독 회사 공장에는 안오더란다. 직원들 스스로가 자재가 남으면 쌓아뒀다가 다시 쓰고, 또 쓰고, 고철이라고 버리질 않으니 가져갈게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버려진 맨홀 뚜껑도 필요하면 가져다 잘라서 썼다.


아픔도 많았다. 황재화ㆍ김성문 파트장은 올해로 각각 S&T에서 최 회장과 손발을 맞춘지 각각 26년차, 23년차 멤버들이다. 황 파트장은 1983년 공장 정문 공사 때 사고로 오른쪽 발목을 잃었고, 김 파트장은 한국중공업에서 일할당시 밤늦은 시간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힘든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오히려 최 회장을 걱정해줬다고 한다. 최 회장은 "기적적으로 살아났지. 정말 성실히 일했어. 대단한 두 사람이야. 몸의 한 부분을 잃고도, 죽다 살아나서도 회사를 위해 일한 S&T 30년 역사의 주인공들이야. 정말 고마워"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이렇게 키울 생각도 없었고, 이 정도로 성장 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서 "지난 30년 동안 한 치의 부끄러움 없는 깨끗하고 모범적인 경영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정도경영'을 굳건하게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T그룹은 S&Tc 30주년을 맞아 별도의 기념행사는 갖지 않고 지난달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계열사 임직원 및 가족, 지역민 등 1600여명을 초청하여 기념음악회를 개최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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