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를 기회로 아시아 은행들 해외 진출 박차
[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국제 금융 무대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데 그쳤던 아시아 지역 은행들이 이제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중심부에 등장했다. 금융위기로 기존 글로벌 대형은행들이 주춤해진 틈을 타 해외 시장 점령에 나선 것.
지난해 리먼브라더스의 아시아 사업을 인수했던 일본 최대 증권사 노무라홀딩스가 대표적인 경우다. 노무라는 당시 리먼의 북미사업부도 함께 인수, 미국 사업을 강화하려 했으나 인수전에서 바클레이스에 밀리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노무라는 리먼 인수와 더불어 발생한 인건비 부담 등으로 지난해 사상최대 적자를 기록하는 고전을 겪었지만 금융위기가 1년이 지난 현재, 정렬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미국사업 강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노무라는 신주발행을 통해 48억 달러를 조달하고 내년 3월까지 미국에서 1200명을 고용할 예정. 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노무라의 시바타 타쿠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보스톤과 뉴욕 내 기관투자자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모건스탠리의 지분 20%를 인수했던 일본 미쓰비시UFJ파이낸셜 그룹도 미국 채권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미쓰비시는 최근 미국 자회사인 유니온 뱅크에 20억 달러를 투입, 힘을 실어줬다. 전문가들은 미쓰비시가 유니온뱅크의 체력을 키운 뒤 미국 내 금융기관 인수합병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미국 기반산업과 부동산의 틈새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받는 호주 맥쿼리 그룹은 최근 미국 투자은행 폭스핏켈튼코크란케로니아월러를 인수, 금융 기관 입지 강화에 나섰다. 지난 5월 트리스톤캐피털글로벌, 8월 링컨내셔널코프를 인수한데 이어 3번째 북미지역 금융기관 인수합병이다.
폭스핏은 맥쿼리의 리서치 능력을 높여줄 뿐 아니라 금융업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맥쿼리는 미국에서 2000명의 인력을 확보했다.
또 다른 호주은행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ANZ)은 지난 8월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아시아자산을 인수하고 해외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ANZ는 RBS의 자산을 인수하기 전에도 SRC(Shanghai Rural Commercial), 말레이시아 AMMB홀딩스 등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아시아 진출을 물색해 왔다. 지난 달 말에는 네덜란드 ING로부터 PB사업 부문 합작사의 잔여 지분을 인수하며 확장세를 이어나갔다.
중국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ICBC)은 일찌감치 해외진출에 나선 사례. 이 은행은 지난 2년간 총 60억 달러를 들여 태국, 인도네시아, 마카오, 남아프리카, 캐나다의 지역 은행들을 차례로 인수해 왔다. 공상은행은 해외사업의 순이익을 3배 늘린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아시아 은행들의 이같은 활약에는 금융위기가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형은행들의 견제가 주춤해졌을 뿐 아니라 파산한 중소형 은행들이 늘어나면서 인수합병의 기회도 커진 것. 로치데일 증권의 리차드 보브 애널리스트는 "미국 은행들이 자본확충과 보너스 제한 등의 금융규제로 위축될 것이라는 점이 아시아 은행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은행들이 비교적 탄탄한 유동성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도 장점.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아시아 은행업계의 평균 기본자기자본비율(Tier1)은 9.5%로,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의 경쟁사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한편 무분별한 확장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1980년대 글로벌 기업쇼핑을 일삼던 ‘일본주식회사’가 버블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했던 일을 거론하며 해외진출 아시아 은행들이 현지화 능력, 정치력 등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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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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