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신지 양식장, 밤새 무슨 일이…
40대 인부, 17년간 구타· 저임금· 고된 노동 시달려
베트남 신부 "관리인에 줄곧 성폭행 당했다" 고소
유족 "진상 유족 "진상 낱낱이 밝혀야".. 타살여부 수사
$pos="C";$title="";$txt="완도군 신지면의 한 양식장 바로 앞바다에서 이 양식장 인부 한씨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돼 의혹을 낳고 있다. 한씨의 유족들이 시신이 떠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 (원 안이 시신 발견 지점) 김진수 기자 gomoosin@";$size="550,324,0";$no="2009073016502406303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지난 18일 아침 완도군 신지면의 H양식장 앞바다에서 인부 한관희(41)씨의 시신이 떠올랐다. 가족들은 타살이라 주장하며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이틀 뒤 한씨의 부인인 베트남 이주여성 배로남(가명ㆍ23)씨는 이 양식장의 명의상 대표이며 관리인인 A씨(65)씨로부터 3년 넘게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다며 완도해경에 고소장을 냈다.
또 한씨와 함께 일해 온 한씨의 동생 용희(40)씨는 13년 동안 지긋지긋한 노동 착취에 시달렸다며 치를 떨었다. 의문의 죽음, 성폭력, 노동 착취 등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이 양식장과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완도해경에 지역민의 이목이 쏠려 있다.
◇ 타살인가 실족사인가
숨진 한씨는 지난 17일 밤 9시께부터 동료 차모(48)씨와 술을 마셨다. 저녁을 함께 먹은 동생 용희씨는 숙소로 돌아간 뒤였다. 다음날 새벽 5시 동생 용희씨는 여느 날처럼 광어 먹이주기를 시작했다. 평소 셋이서 했으나 나머지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투덜거리며 홀로 일을 마쳤다. 활어차가 들어와 생선을 실어주고 나서도 형 한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 이상한 일이 있었다. 형의 신발이 방파제 도로 안쪽에 놓여 있었다. 용희씨는 '형 신발이 왜 여기에 있지?'하고 갸웃거리며 2층 숙소 계단 아랫쪽에 신발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한참 일을 하다 보니 신발이 처음 있던 곳에 다시 옮겨져 있었다.
8시가 되도록 한씨가 보이지 않자 이 양식장의 여 주인이 신지파출소에 실종신고를 냈다. 경찰은 주변을 수색한 끝에 양식장 바로 앞바다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엎드린 채 떠 있는 한씨의 시신을 찾아내 해경에 인계했다.
한씨의 가족은 관리인 A씨가 이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A씨가 평소 폭언과 구타를 일삼아 왔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해경 조사 결과, A씨는 사건 하루 전부터 지인들과 경기도에 있었던 것으로 알리바이가 확인됐다.
당시 이 양식장에 있던 사람은 동료 차씨, 여 주인, 여 주인의 여동생, 용희씨 등 다섯명이다. 만약 자살이나 실족사가 아니라면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고, 숨진 한씨의 신발을 옮겨 놓았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완도해경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한씨의 사인은 익사로 판단됐으며 왼쪽 머리와 어깨 등에 날카로운 바위에 찍힌 상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경은 술에 취한 한씨가 방파제로 떨어지면서 다치고 결국 익사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누군가 한씨를 떼밀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족들은 "실족에 의한 익사는 결코 아닐 것"이라며 타살 가능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만약 한씨가 실족으로 바다에 빠질 정도로 술에 취했다면 2층 관리실의 가파른 계단을 어떻게 내려왔겠냐는 것이다. 한씨의 신발이 옮겨진 것 역시 진실을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 성폭력, 진실은 어디까지
4년 전 열아홉살 나이로 한씨에게 시집 온 베트남 이주여성 배씨는 남편과 함께 이 양식장에서 일했다. 월급 50만원에 숙식 제공 조건이었다. 온갖 고생 속에서 3년 전 7월에는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A씨로부터 잦은 구타와 성폭행을 당해 왔다는 게 배씨의 주장이다.
남편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자 배씨는 곧장 가족의 도움을 받아 A씨를 완도해경에 고소했다. 배씨는 "A씨가 옷을 홀랑 벗은 채 달려들어 옷을 찢고 성폭행 했다"면서 "지난 3년여 동안 수십차례 피해를 당했다"고 말했다.
견디다 못한 배씨가 4년여의 양식장 생활을 접은 건 남편 사망일로부터 한 달 전인 6월19일이었다. 배씨는 "이 날 밤 A씨가 때리며 덤벼들자 겁이 나 휴대전화로 구해달라고 부르짖은 뒤 도망쳤다"며 "명사십리의 시어머니 집으로 피했는데 A씨가 이곳까지 쫓아와 문을 차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경 관계자는 "A씨가 피의자 조사에서 단순폭행 일부만 인정할 뿐 성폭력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성폭행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
한씨는 이 양식장에서 17년을 노예처럼 살았다. 용희씨도 13년을 이곳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강제로 갇힌 것은 아니지만 잦은 폭언과 구타,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려 왔다. 용희씨는 "처음에는 50만원이었다가 지금은 1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월급을 직접 주는 것도 아니다. '알아서 관리해주겠다'는 주인 측의 말만 믿고 있다.
용희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10만원을 가불해 쓰고 있을 뿐 통장을 만져보지도 못해 얼마의 돈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형제가 인성이 착하고 물정에 다소 어두운 점을 주인 측이 악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베트남 신부인 배씨 역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4년여를 지냈다. 신지면의 이주여성은 40여명인데 유독 배씨만 이주여성에게 주어지는 혜택에서 제외돼 왔다는 게 가족의 주장이다.
자치단체나 사회복지 기관ㆍ단체들이 이주여성의 인권을 살피고 있지만 배씨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3년여를 성폭행에 시달리다 이제 남편까지 잃은 배씨에게 구원의 손길은 멀기만 하다. 그러기에 네살바기 아들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배씨에게 한국은 더 이상 행복한 땅이 아니다.
@include $docRoot.'/uhtml/article_relate.php';?>
광남일보 전세종 기자 sjsj@gwangnam.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