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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구제금융 자금, 어디서 잠자나

중앙은행의 유동성 펌프질에도 실물경기의 '돈줄'은 여전히 말랐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융위기 이후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은행에 투입했지만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면서 유동성은 늘어났지만 신용경색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시중은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또 중앙은행이 공급한 자금은 어디에서 잠자고 있을까.


문제는 유동성의 '역류'다. 중앙은행이 지원한 유동성이 시중은행을 통해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에 맡긴 예비금은 지난달 442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공급한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다.

ECB는 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지난 달 24일 4420억 유로 규모의 1년 만기 단기대출을 1121개 유로존 은행에 제공한 바 있다. ECB의 자금공급 이전까지는 500억 유로를 넘지 않았던 예비금이 지난 20일에 1880억 유로까지 불어났다. 이 달 들어 300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한 날도 수차례 등장했을 정도.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상업은행이 맡긴 예비금이 858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98%인 8420억 달러는 민간 대출에 대한 예치금이 아니라 순수하게 '남아 도는' 현금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역류현상은 은행들이 잠재적인 대출 손실에 대한 우려로 가계나 기업 대출을 꺼린 데 따른 것. 이 때문에 은행에는 유동성이 남아돌지만 정작 민간 부문은 정부 지원의 혜택에서 소외된 것이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총재는 “은행들은 추가로 공급된 유동성을 경기를 부양하는데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한편 이 자금이 신용창출로 이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상업은행들은 공급받은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것 외에도 국채 매입에 투입했고, 최근 자본시장이 회복되면서 투자 적격 등급의 회사채나 주식 등에 투자했다.


문제는 자금 흐름의 왜곡으로 인해 일본식 장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자금의 역류현상이 지속될 경우 가계와 기업들의 숨통이 막히면서 전체 경제를 위협하게 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1990년대 일본의 장기침체 때와 흡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일본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는 신용창출로 전환되지 못했고 결국 일본의 머니마켓은 제 기능을 못하고 양적완화 정책은 실패에 이르게 됐다.


영국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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