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 외풍을 맞은 검찰이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내부 수사 동력까지 잃어가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인 천 회장을 구속 수감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편파성ㆍ표적성 시비를 무마하고, 나머지 수사를 예정대로 마무리하려던 검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千회장 영장 기각으로 '정면돌파' 동력 상실 = 김형두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일 대검 중수부(이인규 검사장)가 청구한 천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천 회장이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 등에게 청탁한 사실은 소명됐으나 대가로 중국 베이징에서 15만위안(2500만원)을 받았다는 점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회사에 투자한 6억2300만원을 돌려받지 않았다는 점은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어 "조세포탈 혐의는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권거래법 위반 부분은 소명이 있다고 인정되지만 범행의 정도와 동기 등을 참작할 때 비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천 회장를 구속 수감해 그동안 제기됐던 '위기론'을 정면 돌파하려던 검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수사 진행 중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점은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손상돼서는 안 된다"고 밝히는 등 외풍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첫 작품인 천 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가 '소명 부족'으로 기각 결론 나자 '정면 돌파' 동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부실 수사ㆍ편파 수사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ㆍ법무장관 사퇴론에 수사팀 고발까지= 이에 따라 임채진 검찰총장과 김경한 법무부 장관 경질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지난달 23일 법무부에 사표를 제출했으나, "사태 수습이 우선"이라는 김 장관의 설득으로 반려된 바 있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마무리해 표적 수사 논란을 잠재우려던 검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임 총장과 김 장관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게다가 민주당 등 야권에서만 제기됐던 사퇴론이 여당 일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점도 이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이밖에도 민주당이 2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하자 수사팀도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수사팀은 같은 날 오후 2시 이상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소환하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수사를 해본 뒤 구체적 혐의가 드러날 경우 언론에 알리겠다'는 설명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가 검찰의 일방적인 '피의사실 공표'로 인해 초래됐다는 검찰 안팎의 지적을 민주당 고발 이후에야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다.
이에 따라 중수부 폐지론, 특별수사 방식 수정론이 거세지는 한편, 공직자비리부패수사처(공수처) 혹은 상설특검 도입, 피의사실 공표 금지 법제화, 검찰 기소독점주의 개선 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진우 기자 bongo7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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