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금융위기의 원인을 감독 기구에서 찾았다.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대공황 이후 체계를 갖춘 감독 기관들이 시장의 진화를 쫓아가지 못해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위기가 촉발됐다는 것. 따라서 이번 위기를 완전히 해소하려면 감독 기구의 새 판 짜기부터 나서야 한다는 것이 쉴러 교수의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은 감독 기관 재편에 팔을 걷었다. 미국 정부는 FDIC의 개혁과 은행 감독 기구의 폐지 및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권한 강화 등 다각적인 방안을 놓고 고심중이다.
미국 재무부가 6월 중순까지 밑그림을 마련하기로 한 가운데 모기지 대출과 신용카드 부문을 규제하는 한편 헤지펀드와 보험에 대해 감독하는 기관을 새롭게 설립하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 경영이 부실화될 경우 금융시스템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기업을 감독하는 별도의 기관을 두는 방안도 검론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4개 연방기관을 통폐합해 초거대 감독기관을 세우는 다소 급진적인 방안을 검토했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은행위원회 의장인 크리스토퍼 도드 코넥티컷 상원의원은 "4개 기관을 통폐합하는 과정에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4개 기관 가운데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이 폐지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AIG의 부실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OTS의 폐지는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이 지난해 말 처음 제안했고 이후 점점 높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찰스 슈머 뉴욕 상원의원은 "은행 감독기관이 지나치게 많다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다"며 "특히 OTS는 정체성에 대해 정치적인 지지를 거의 얻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통합도 거론되고 있지만 정치권의 극시한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두 기관 역시 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피감 기관들이 합병에 반기를 들고 있다.
감독 기관 재편의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기업 및 금융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데 있다. 지난 4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헤지펀드와 파생상품의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것. 미국 의회는 재무부가 제시하는 방안에 대해 연말까지 입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유럽도 금융감독기관의 개혁에 본격 착수했다. 최근 호세 마뉴엘 바라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위원장이 개혁안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가 내놓은 방안은 가칭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European Systemic Risk Council)와 유럽금융시스템감독원(European System of Financial Supervisors)을 세워 금융권 리스크에 대한 조기 경보 및 감독 강화에 나선다는 것이 골자다.
두 개 기관 모두 금융시장에는 국경이 없는 데 반해 감독은 국경을 넘지 못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유럽 금융권의 근본적인 결함을 바로잡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유럽 각국이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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