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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정이현 대담 '소설과 사랑과 거짓말'

[아시아경제신문 박소연 기자]섬세하고 세련된 감성으로 한일 양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여성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와 정이현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2009 서울국제도서전 부대행사로 14일 오전 11시 코엑스에서 소설가 정이현과 에쿠니 가오리가 함께하는 '한일 여류작가 대담'을 진행했다.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대담회에서 두 작가는 작품을 중심으로 한 한일 여성들의 삶과 사랑, 소설 속 여성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행사장는 번역가 김난주씨가 사회를 맡았고, 많은 팬들과 취재진이 참석했다.

에쿠니: 놀랍다. 이렇게 많은 카메라 앞에 서기는 처음이다. 날씨도 아주 좋고 오늘 방한 3일째인데 이런 행사에 올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정이현: 결혼한지 2달정도 됐다. 정신없고 이런게 일상이구나 느끼면서 살고있다. 결혼을 한다고 했을때 주변 분들이 '소설과 함께 병행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개인적으로는 두개가 왜 같이 갈 수 없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작가의 개인적인 삶이 문학이나 예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실이 따로 있다가 없어지고 같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에쿠니씨는 어떤식으로 작업을 하고 계시는지, 마감이 있으면 저녁밥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다.

에쿠니: 저야말로 정이현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소설가 뿐만 아니라 직업을 갖고 있는 모든 여성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인 것 같다. 저는 제 남편이 좀 가엽다. 저는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집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집안일을 안한다. 정 작가의 남편도 가엽다 그런면에서.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다. 있는듯 없는 듯 살지만 그러다 마주치면 집안에서 새삼 만나는 듯한 신선함이 있다.

정이현: 아직은 남편이 불쌍한지 잘 모르겠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7시30분 정도까지 규칙적으로 출근을 시키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면 회사에 취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 속 사랑에 대해
에쿠니: 저는 연애소설이라 불리는 작품을 쓰고 있지만 저 자신은 반드시 연애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고 어떤 전제되지 않는 것, 흘러가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사랑이 작품에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람을 알기쉽게 설명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달콤함은 '카카오 80%였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소설 내용이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 단 것을 잘 못먹는 사람이고 달콤한 도시도 다른 사람에게는 달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달콤하다'는 형용사가 주관적이라는 생각에 그런 제목을 지은 것 같다. 사랑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하게 된다. 고통스런 사랑인데 굳이 그 사랑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달콤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일까보다는 흔히 말하는 우정 사랑 등의 감정들의 뒷편에 뭐가 있는지, 낭만적 사랑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제도·사회가 그것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작품에 대해
에쿠니: 신작 '좌안-마리이야기'는 아주 어린 여자가 쉰살 정도 될 때까지의 생을 더듬어 가는 소설인데 이런 소설은 처음 쓴 것이다. 전체를 다 그리는 것보다 어떤 한 부분에서 오늘이든 오늘 이 장소든 작은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인과관계에서 이유를 찾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고 어떤 인과관계를 그리는 것보다 습관적인 것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긴 인생을 더듬어 가더라도 부분부분 포인트를 가져오고 습관을 그려내지 않을까 생각해서 쓰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라는 여자주인공이 직면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를 바랐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마리의 어린 시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칵테일을 만드는 40살의 마리가 어린시절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소녀 마리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주인공 오은수는 32살, 여자 나이 서른 부럽다.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굉장히 좋은 나이였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한살 한살 나이들수록 내 나이가 더 좋아진다. 20대 초반은 이해 못할 것 같고, 자기 위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러가지 경험, 상처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지금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시행착오는 여전히 지금도 겪고 있다. 지금 나이에도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라 생각을 못했는데 여전히 혼란스럽고 설레고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운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 좋다. 우리나라만 그런것인지 다른 사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는 나이에 대한 강박,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는 것 같다. 그 나이가 지나면 무언가 인생이 끝나기라도 할 것 처럼 그런 분들이 많은데 나이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한다.

소설과 거짓말에 대해
정이현: 어렸을 때 시험문제에서 소설이 무엇인지 고르라는 질문에 소설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답했는데 틀렸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는데 소설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6·25를 겪은 할머니의 삶을 보면서 '소설 한 권으로도 다 못쓴다' 그런 말도 하는데. 그럴때 소설이라는 말은 거짓말일까 진실일까 그런 생각도 하고. 거짓말같은 진실이 판치는 세상에서 나의 소설은 '지금 이순간 여기서 말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짓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은 과거형이다. 있었던 일과 소설을 쓰는 그 사이에 내가 거짓말을 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화법에 대한 관심을 두루 두루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30대에 쓸 수 있는 소설을 쓰려고 한다.

에쿠니: 내가 생각하는 정직함이라는 것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일본말로 모노가타리(이야기함,storytelling)라는 것은 그 자체가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나는 거짓말을 좋아한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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