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독감의 확산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세계경제에 새로운 위협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경제 회복을 이끌던 국제무역이 축소될 조짐을 보이면서 그동안 조심스럽게 제기됐던 장밋빛 전망들이 무색해지고 있다.
◆ 고조되는 무역 분쟁 가능성
세계보건기구(WHO)가 전날 멕시코, 미국 등에서 희생자를 내고 있는 돼지독감을 ‘국제적으로 우려되는 공공 보건 비상사태’로 선언했다. 돼지독감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태국 등이 미국 및 멕시코산 돈육제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자 다른 국가들도 서둘러 금수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이에 이번 사태가 글로벌 무역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아직 돼지독감의 정확한 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들이 보호주의 움직임을 옹호하기 위해 이번 사태를 악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제임스 아우거 수석 애널리스트는 “돼지독감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국가들의 보호주의로 선회할 수 있어 국제 무역이 타격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경제 회복을 위해 국제적으로 무역 제한조치를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돼지독감의 발발은 아주 나쁜 징조라고 덧붙였다.
무디스 이코노미 닷컴의 수석 경제학자 투 팩커드도 이번 발발이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지는 미국이었지만 이것이 무역과 금융시장을 통해 다른 나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무역이 위축되면 글로벌 경제는 다시 바닥으로 추락할 지 모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돼지독감 사태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이 이미 경기침체로 허덕이고 있는 개발도상국와 신흥시장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보건의료지출을 늘릴 수 없는 이들 국가들로 돼지독감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여행업계와 항공업계는 울상
영국, 독일 등의 국가가 멕시코로의 여행 제한 조치를 발하자 항공 및 여행산업이 크게 타격 받을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의 보건 위원장도 돼지독감이 발생한 지역으로의 여행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내렸다.
특히 지난해 고유가로 입은 심각한 타격을 감원,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겨우 수습해가던 항공업계가 다른 돌발 악재에 시달리게 됐다
이밖에도 돼지 수요가 급감해 사료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로 콩과 옥수수 가격도 급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돼지독감 쇼크가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세계은행은 보건의료지출비 늘릴 계획
이런 상황에서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에게 지원되는 보건의료비 지출을 3배로 늘려 눈길을 끈다. 세계은행은 27일 개발도상국 및 최빈국을 위한 보건기금을 지난해 10억달러에서 31억달러로 늘렸다고 발표했다.
원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증액된 이번 기금은 아프리카, 남미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돼지독감의 확산 방지를 위해 이용될 방침이다.
은행은 지난해 독감으로 인해 매년 3조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세계 총경제생산(GDP)의 5% 이상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 독감사태와 비슷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는 2003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400억달러의 손실을 입힌 기록이 있다.
김보경 기자 pobo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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