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이 비상사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워낙 비상사태가 잦다보니 또 어느 회사가 파산했나 싶었는데 이번엔 돼지가 말썽을 일으켰답니다. 멕시코에서 시작된 돼지 인플루엔자가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멕시코에서 9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돼지 인플루엔자는 지난 주말 미국에서도 20건의 감염을 확인했답니다.
미국뿐 아닙니다. 프랑스, 뉴질랜드 등에서도 이 증세가 나타나고 있답니다. 각국 정부는 미국과 멕시코를 여행한 사람들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돼지 인플루엔자가 사람끼리도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황의 심각성 때문인지 세계보건기구(WHO)는 25일 멕시코와 미국의 돼지독감 확산 사태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우려 사안'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몇해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조류 인플루엔자(AI)를 연상시키는 돼지의 공포입니다.
하지만 공포를 공포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에겐 공포지만 내겐 돈을 벌 기회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지요. AI 소식에 닭 사육농가가 파산을 하고, 농민이 농약을 마셔도 증시엔 AI수혜주가 어김없이 뜹니다. 심지어 북한이 미사일을 날려도,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위협을 해도 전쟁 관련주가 움직입니다. 일요일 저녁 돼지 인플루엔자 뉴스를 듣고 처음 생각한 것도 이 사태의 수혜군은 무엇일까? 돼지 관련한 종목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등이었습니다.
◆농민 눈물 위에 뜨는 수산주 이번에도?=보통 이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면 대체재들이 주목을 받습니다. AI나 광우병, 돼지 구제역 등 축산관련 질병이 나올때마다 집중 관심을 받는 종목은 수산주입니다. 청정지역인 바다에서 나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먹거리란 인식때문인데요. 동원수산, 오양수산, 대림수산(현 사조대림), 삼성수산, 신라교역, 동원산업, 사조산업 등이 동반 상한가를 가는 예가 허다했습니다.
이들은 실제 돼지 인플루엔자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 24일 동반 급등하며 테마의 위력을 확인시켰습니다.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거래정지 중인 삼성수산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특히 사조대림은 상한가로 장을 마쳤습니다. 주말 돼지 인플루엔자의 피해가 더욱 확산됐으니 수산주에 몰빵한 투자자들은 바다 건너의 소식을 은근히 즐겼을까요.
하지만 수산주의 테마가 오래가는 예는 별로 없습니다. 보통 하루 이틀 강세를 보이다 제자리를 찾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심지어 테마의 생명력이 하루를 못가기도 합니다. 이는 수산주가 실제 돼지고기나 닭고기의 대체제로서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AI가 발생하면 닭고기 소비가 급감하고, 돼지 구제역이나 광우병 소식이 들리면 돼지고기와 쇠고기 소비가 큰 폭으로 줄지만 이것이 바로 수산주의 매출 급증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2007년 5월부터 8월까지 수산주가 랠리를 보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우리 증시의 유례없는 대세 상승기였습니다.
◆수산주 뒤를 잇는 치료업체들과 다른 대체제들=AI가 장기간에 걸쳐 수차례 국내 보건계를 긴장시키면서 AI 수혜주는 진화를 했습니다. 바로 방역 및 백신업체들이 수혜주로 부각된 것인데요. AI와 관련된 백신을 만들거나 방역과 관련된 업체들이 AI 수혜주로 분류됐습니다. 유한양행, 녹십자, 중앙바이오텍, 한국콜마, 제일바이오, 대한뉴팜, 씨티씨바이오, 파일약품, 에스디 등이 이런 저런 이유로 AI수혜주로 분류되는 제약 바이오 업체들입니다.
이번엔 조류가 아닌 돼지로부터 발생한 독감(인플루엔자)이니 아마 치료제도 다를테니 수혜주들의 면면도 달라질까요. 의약전문가가 아니라 속단하긴 이르지만 미세조정은 있을지언정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국내업체들이 생산하는 의약품이 대부분 범용제품인데다 실제 AI가 발생했을 때 이들의 매출이 연관돼 급증하지도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ㅇㅇ약품'이 이래서 돼지 인플루엔자 수혜주다는 식의 새로운 종목의 테마합류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돼지고기의 유력 대체제인 쇠고기와 닭고기업체들은 어떨까요. 바로 판단이 안서는데요.
쇠고기의 경우, 증시에선 일단 마이너스(-) 효과에 점수를 줬습니다. 국내에 상장된 쇠고기 관련업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 업체인 한일사료, 한미창투, 이네트 세곳입니다. 돼지고기 대체제로서 쇠고기업체는 남몰래 미소지을만한 사건이 터졌지만 발생지역이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대형 가축질환이 발생했다는데 쇠고기도 자유로울까 하는 심리에서 이들 업체들은자유로울 수 없었나 봅니다. 지난 24일 이들은 모두 3~4%대 하락한 채 장을 마쳤습니다.
국내에서 닭을 사육해 판매하는 하림과 마니커는 수혜를 입을까요.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 소비가 늘어날 수 있으니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과거 돼지고기 구제역 파동때 닭고기 값이 강세를 보인 예도 있었습니다. 일단 증시 반응은 무덤덤했습니다. 하림과 마니커, 모두 강보합 수준으로 지난주를 마쳤습니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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