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키코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원ㆍ달러 환율 급등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키코는 익히 알고 있겠지만 환 헷징 상품입니다. 물론 이후 밝혀진 현실에서의 키코는 환 헷징과 환 투기의 종이 한 장 차이란 불편한(?)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됐지만요. 키코로 쏠쏠한 부수익을 얻은 기업들이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리스크를 키워 대규모 손실을 입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인식이 퍼진 것이죠.
키코 상품에 덜컥 가입했던 기업들은 원ㆍ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시작하면서부터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환율이 오르는 만큼 거래ㆍ평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부풀었기 때문이죠.
키코주에 한번 엮이면 주가는 바로 롤러코스터에 올라탔습니다. 환율 급등락에, 혹은 키코 손실 소식에, 혹은 키코 위험서 해방됐다는 뉴스에 주가는 냉온탕을 오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공든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눈앞에서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셈이죠.
문제가 심각해지다 보니 감독 당국에서는 서둘러 키코 손실을 공시토록 규정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의외의 기업들이 키코 혹은 리스크가 더 심한 환 헷징 상품에 가입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적이 소위 말해 엄청나게 좋은 기업을 비롯해 시장 점유율 1위 업체, 시가 총액 상위 종목 등도 키코 유혹의 덫에 걸렸다는 사실에 투자자들은 실망을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몇몇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던 상장사가 상장폐지 유예 신청을 통해 퇴출은 모면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 당국도 2년 동안 퇴출을 유예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태산엘시디와 심텍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태산엘시디는 지난해 말 현재 1700억원이 넘는 파생상품 거래 및 평가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자본도 물론 잠식 상태죠.
최근 키코주가 잠잠해진 사이 재밌는 일이 또 하나 터졌습니다.
코스닥 시총 10위 언저리를 지키고 있는 풍력 단조 전문업체 평산이 이달 들어 파생상품 손실을 알리고 실적 발표를 한 데 이어 연이틀 신주인수권부사채(BW) 142억원 어치와 3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에 나선 것입니다.
자금을 땡기는(?) 대상은 산업은행입니다. 키코 등 파생상품에 따른 지난해 40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평산은 단기 차입도 높은 편입니다. 시장에 알려진 바로는 산은은 2000억원 상당의 대규모 자금을 지원키로 했답니다. 제 살길을 발 빠르게 모색한 셈이죠.
이러한 평산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리고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는 유효할 것이란 게 중론입니다.
NH투자증권과 굿모닝신한증권 등은 산은의 자금 지원과 풍력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 호평을 하는 반면 모건스탠리는 평산의 올해 실적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주가가 횡보 상태에 머무를 것이란 다소 부정적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지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산은의 자금 지원에 따른 유동성 문제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고 풍력 시장 성장 등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4만2000원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평산이 외화 차입금 규모를 축소하면서 장기 차입금 비중도 약 50%로 확대할 계획으로 환율 상승 시 증가했던 환차손 규모가 축소되면서 단기 운용자금 활용에 있어서도 과거보다 안정된 모습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다만 모건스탠리는 외화 관련 파생상품과 부채와 독일 자회사의 손실이 주가에는 단기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