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을 여는 서울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 참여한 11명의 인터넷 추천 인사들은 모두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주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지하철에 떨어진 시민을 구한 의인,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상자 등 다양합니다. 그 중 ‘붕어빵 아주머니’의 참석은 눈길을 끕니다.
그는 충북 영동 한 시장 어귀에서 붕어빵과 어묵을 팔며 9년째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연말이면 어김없이 읍사무소를 찾아가 1년 내내 모은 동전이 가득한 돼지저금통을 내놓고 간답니다.
지난해 그가 맡긴 돼지저금통에는 54만500원이 들어있었고 읍사무소는 쌀 14포대를 사 독거노인들에게 나누어줬답니다. 비록 크지 않은 돈이지만 자신도 넉넉지 않아 작은 손수레에서 장사를 하면서 나누는 온정은 어느 누구의 선행보다도 감동이 있습니다.
얼마 전 남편의 유언에 따라 12억원대의 토지를 경기도에 기부한 80대 할머니의 이야기도 훈훈한 정을 줍니다. 먼저 간 남편이 ‘기업 활동으로 모은 재산은 일정 규모를 넘으면 개인재산이 아니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며 할머니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개인으로 운영해오던 토기전문박물관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크게 드러내지 않고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기 시흥시에는 2년 가까이 매달 쌀 100포대를 기부하는 독지가가 있답니다. 그는 50대 초반 사업가로만 알려져 있을 뿐 신원 밝히기를 끝내 사양하고 있으며 지난 연말에는 전남 화순과 강원 속초에서도 익명의 선행이 줄을 이었습니다. 전북 전주에서는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매년 몇 천만 원씩 9년째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해 자선냄비 모금에는 불황으로 기업과 단체의 기부는 전년에 비해 10% 이상 줄었으나 개인 기부가 20%가량 늘어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답니다. 기부자 수와 개인 평균 기부액도 늘어 뭉칫돈보다는 쌈짓돈이 대형 기부가 줄어든 자리를 채우고도 넘친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우리의 나눔 문화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한 사람당 기부액이 한해 100만원을 넘으며 개인기부의 비중이 국민총생산의 1.67%에 달한답니다.
자신의 재산 99%를 사회에 환원하고 자녀에게는 100만달러만 물려주겠다고 선언한 빌 게이츠나 379억달러의 거금을 빌 게이츠재단에 기부한 워런 버핏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는 총 5020만달러, 우리 돈으로 550억원의 거액을 기부했고 영화배운 폴 뉴먼은 120억여원을 대학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6만개가 넘는 자선재단에 한해 400조원의 기부금이 들어온답니다.
영국엔 우리말로 ‘중고품 자선가게’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채러티 숍(charity shop)’이 전국에 20만여개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쓰던 생활물품을 기부 받아 수리해 다시 판매하는데 엘리자베스 여왕 등 왕실 가족과 상류층도 쓰던 물건을 내놓고 자주 사간답니다.
성인 70%정도가 매년 한차례 이상 자원봉사도 하고 기부금도 내며 수익금은 불우이웃과 노인, 이재민, 국제난민들을 위해 쓰고 있답니다. 기부문화가 일상생활에 뿌리내려 있으며 체질화되어 한해 걷는 기부액만도 30조원을 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고액기부자를 공개하면서 작은 소동을 겪었습니다. 8억원이 넘는 거액을 짬짬이 기부하고도 이념논쟁에 휘말린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연예인이지만 고교 1학년 때부터 기부활동을 했다니 얼마나 기특한 일입니까. 부모나 주변의 사람들이 당사자보다 더 훌륭한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부행위를 이념과 홍보를 위한 낮은 가치로 폄하하는 일부 인사들의 생각에 어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스타가 있습니다. 지난해 7월 가수 김장훈이 태안 기름유출사고 현장에서 공연을 하다 쓰러진 직후 이를 위문하며 1만달러와 함께 편지를 보낸 중국의 성룡입니다.
김장훈 역시 기부천사로 널리 알려진 연예인이지만 성룡의 선행은 모두에게 감동을 줍니다. 성룡은 최근 20여년간 배우로 활동하며 번 전 재산인 4000억원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한때 쇼핑광이었던 성룡은 “닥치는 대로 사들인 물건이 창고에 쌓이면서 나에게 짐이 될 뿐”이라고 말하고 “아들이 능력이 있으면 아버지의 돈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능력이 없다면 헛되이 탕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사람이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 것처럼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가겠다고 했답니다. 참으로 통 큰 기부입니다. 김장훈도 화답으로 중국 쓰촨성 지진 피해 복구에 쓰라고 1만달러를 보냈다니 그들의 국경을 넘는 온정은 가히 귀감이 됩니다.
우리는 기부를 일부 특별한 사람만이 특별한 마음으로 하는 특별한 행동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많거나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는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작고 다양한 기부가 많습니다.
체중을 1㎏ 감량할 때마다 쌀 1㎏을 기부하는 ‘칼로리 기부’나 생일 등 기념일에 소액을 기부하는 이색 나눔, 자신의 지출 없이도 마일리지나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기부, 일부 티셔츠나 신발 등을 구입하면서 하는 기부, 지금은 열기가 식었지만 크리스마스 실 등 무심코 한 행동들이 기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기부는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누군가를 돕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기부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한 관계자는 “최근 생활이 더 쪼들린다고 하지만 소액 기부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며 “기부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워런 버핏이 왜 기부 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답한 것처럼 내가 기부한 돈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진다는 것이 기부자들의 보편적인 자부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나눔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얼마나 성숙했는지가 관건입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눈다는 연대와 배려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아침, 따뜻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