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기자
60세 이후 연봉이 40~60% 깎여도 상용직 근로자로 남는 것이 해당 시기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보다 돈을 비슷하거나 많이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954만명에 달하는 1964~1974년생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 좁은 선택지 속에서 자영업에 진입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퇴직 후 재고용 제도' 강화 등을 서둘러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대로라면 택배·퀵 서비스 등 취약 업종에 몰린 데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고 부채비율이 높은 특성을 지닌 고령 자영업자는 2032년 250만명으로 급증, 금융 안정과 경제 성장에 위험 요인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재호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은 15일 세종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한국은행·KDI 공동 심포지엄에서 '늘어나는 고령 자영업자, 그 이유와 대응 방안'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60세 이후 소득 조정이 이뤄진다 해도 계속근로가 가능하다면 임금 일자리를 더 선호할 유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년 후 60~64세에는 55~59세 상용직 소득의 60%를 벌며 상용직 계속근로를, 65~69세에는 55~59세 상용직 소득의 40%를 벌며 시간제근로를 유지할 경우 소득 흐름이 정년 후 자영업에 진입했을 때와 유사했다는 설명이다. 이 차장은 "자영업 진입 시 전환비용과 초기 창업비용이 크고 소득 변동성도 높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고령 은퇴자들은 계속근로가 보장될 경우 이전보다 소득이 낮아지더라도 상용직을 선택할 유인이 크다"고 강조했다.
1964~1974년생 2차 베이비붐 세대는 954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단일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법정 은퇴연령(60세)에 도달하고 있다. 은퇴자를 위한 상용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들 중 상당수가 자영업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15년 142만명에서 2032년 248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문제는 고령 자영업자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창업준비가 부족하고 업종 역시 택배·퀵 서비스 등 운수창고를 비롯해 숙박음식·도소매 등 취약 업종에 몰려 있어 수익성이 더 낮고 부채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폐업 등으로 사업을 그만둔 이후에는 임시·일용직으로 전환하면서 재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차장은 "이들의 급격한 증가는 금융안정뿐 아니라 경제성장 측면에서도 리스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은퇴 후 자영업자가 된 고령 근로자 상당수는 '임금근로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자영업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재취업 자영업자들을 연금수준과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구분해 보면, 이들 가운데 46%가 연금수준이 낮고 근로시간이 긴 '생계형'(연금 월 79만원·주당 근로 46시간)으로 분류됐다. 생계형 고령 자영업자는 주로 취약업종에 종사하며 과도한 경쟁에 노출돼 있음에도 부족한 노후대비를 보완하기 위해 '계속근로 가능성'을 가장 중시하면서 높은 근로 의지를 보였다.
이 차장은 고령층이 정년은퇴 이후에도 안정적인 임금 일자리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 본격화, 기존 자영업자들의 높은 현직 유지율 등으로 향후 고령 자영업자 증가세는 지속되겠지만, 이들의 낮은 생산성, 특정 업종에서의 과다경쟁 노출 등을 고려할 때 개별가구의 취약성뿐 아니라 거시경제 리스크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연합뉴스
이를 위해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달 8일 한은이 내놓은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으로 초기에는 정부 보조금 등 유인체계를 통해 자율적으로 재고용 제도 확산을 유도하고, 점진적으로 기업에 재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단계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일본에선 2006년부터 정부가 기업에 고령자 고용과 취업 확보 의무를 부과했으며 그 대상과 나이를 점차 확대 중이다.
쿠팡·이마트 등 고령 자영업자가 다수 종사하는 서비스업에서 임금근로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도록 서비스업의 대형화 역시 필요하다고 봤다. 서비스업의 생산성 증대와 그에 따른 대형화는 다수의 자영업 일자리를 임금근로로 전환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차장은 "앞으로는 ICT 발전으로 인한 서비스 교역화로 글로벌 경쟁 압력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 필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비스업 변화에 역행하는 과도한 규제보다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춘 구조변화를 촉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일손부족에 시달리는 지방 중소기업과 고령 근로자 간 매칭 강화 역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수도권 외 지역 응답 대상 기업의 51%가 가장 큰 기업 운영 고충으로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꼽았다. 이 차장은 "고령층을 자영업이 아닌 임근근로로 유도하는 동시에 지역 기업의 인력부족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도 정주여건 개선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등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재교육 역시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현재 은퇴연령에 진입하고 있는 2차 베이비붐 세대는 인적자본, IT 활용 능력 등이 양호해 변화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은퇴자가 어쩔 수 없는 상황 등으로 자영업에 진입하는 경우엔 ▲고령층이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현 직업과 연관된 분야로 창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카페·치킨집 등 경쟁과열 업종에 대해 사업자 등록 전 사전 교육을 확대하며 ▲공동구매 플랫폼을 활용한 자영업자의 공동구매 활성화, 유통구조 개선 등을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차장은 "자금·세제지원은 취약 자영업자를 타깃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