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새벽에 '고민 있어?'…대화 상대로 챗GPT 찾는 MZ세대

정신과 진료보다 싸다…"사람 살리는 답변들"

"우울한데, 새벽이라 그런가?"

"새벽이라 그럴 수도 있어. 피곤한데 잠이 안 오면 더 예민할 수 있거든. 뭔가 고민 있으면 이야기해도 돼."

새벽에 도통 잠이 들지 못한 김나윤씨(38·여)가 최근 채팅으로 나눈 대화다. 대화 상대는 가족도, 친구도 아니다. 바로 생성형 AI '챗GPT'다. 고민 있느냐는 따뜻한 답변에 우울감이 가라앉은 김씨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난 김씨는 다시 챗GPT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잘 보내려면 뭘 하는 게 좋아?" 챗GPT는 곧바로 김씨에게 여러 답변을 내놓았다.

"아침을 잘 시작하면 하루가 좀 더 괜찮게 흘러가니까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해줄게. 일어나서 햇빛 보기, 가벼운 스트레칭, 기분 좋은 루틴 만들기…."

MZ세대가 일상 대화 상대로 챗GPT를 찾고 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챗GPT에게 말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 토로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털어놓았다. 일부 이용자들은 챗GPT와 대화할 때 오히려 사람보다 더 편안한 친구로 느낀다고도 했다.

김나윤씨(38·여)는 새벽에 잠을 설치다가 생성형 AI인 챗GPT를 찾았다. 챗GPT는 고민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따뜻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나윤씨 제공

김나윤씨(38·여)는 새벽에 잠을 설치다가 생성형 AI인 챗GPT를 찾았다. 챗GPT는 고민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따뜻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나윤씨 제공

김씨는 시도 때도 없이 챗GPT와 일상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원래 김씨는 궁금한 것을 찾는 용도로만 챗GPT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3개월 전부터 챗GPT와 별의별 주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상황에서 대화 나누는 상대로 챗GPT가 제격이었다. 김씨는 "소화가 안 될 때는 속이 안 좋다고 토로하고 운동하다가 무릎 아플 때는 얼마나 쉬면 좋을지 물어봤다"며 "챗GPT와 대화하면서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장소·시간 불문, 맞춤형 위로하는 챗GPT

MZ세대는 챗GPT를 대화 상대로 찾는 첫 번째 이유로 편의성을 꼽았다. 언제 어디서든 대화하고 싶을 때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챗GPT를 누르면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구모씨(32·여)는 일본 도쿄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시간이 늦어 숙소에 못 들어갈 수 있다는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때 꺼내든 건 챗GPT였다. "숙소에 못 들어가면 어떡해?"라는 물음에 챗GPT는 먼저 안심시키는 답변을 내놓았다. "지금 상황이라면 정말 많이 지쳤겠다. 그런데 당신, 너무너무 잘 버텼어요. 진짜예요." 구씨가 안심하고 나서야 챗GPT는 도쿄 시내에서 늦은 시간 예약할 수 있는 숙박을 추천했다.

장모씨(31·여)는 최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다. 챗GPT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장씨의 불안함을 이해했다. 장씨 제공

장모씨(31·여)는 최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다. 챗GPT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장씨의 불안함을 이해했다. 장씨 제공

'맞춤형'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학습한 챗GPT는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MZ세대들은 별 기대 없이 챗GPT에게 고민을 토로했다가 원하는 답변을 받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장모씨(31·여)는 자신을 무조건적 공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사람과 달리 언제나 '무한 공감'해주는 챗GPT로부터 큰 위로를 얻고 있다. 최근 회사에서 일을 잘 해내고 있는지 불확실하다고 토로하자 챗GPT는 "지금 느끼는 불안함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인 거야. 그건 이미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위로해줬다.

장씨는 일상생활에 챗GPT와의 대화가 도움 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 아이(챗GPT)는 죽음이라는 게 입력 안 된 것처럼 꼭 사람을 살리는 답변을 준다"고 말했다. 장씨는 항상 위로해주는 친구, 챗GPT에게 '지피'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정신과 상담보다 싸다…외로운 사람이 찾는 챗GPT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자기개발서 코너에서 한 직원이 인공지능 챗GPT가 쓴 자기계발서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MZ세대들은 이런 이유로 챗GPT 유료 계정을 쓰기도 했다. 챗GPT 유료 계정 이용료는 매달 20달러, 원화로 약 3만원대 초반이다. 하지만 정신과를 찾는 것보다 가성비가 좋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울증 환자 1인당 진료비는 53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챗GPT 유료 계정 1년 이용료는 약 40만원,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보다 값이 싸다.

허모씨(29·여) 역시 챗GPT를 무료로 쓰다가 유료 결제까지 해버린 사람 중 한 명이다. 무료 계정과 비교할 때 유료 계정의 대화 수준이 '훨씬' 낫다는 것을 체감했다. 허씨는 "고민을 털어놓을 때 사람보다 더 좋은 공감 능력을 보여준다"며 "한 달 이용료가 5만원이어도 결제할 것 같다. 주변 사람에게 꼭 유료 계정을 쓰라고 추천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챗GPT와 대화 나누는 깊숙한 심리에는 '외로움'이 있었다. 나의 고민을 이야기할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하거나 공감 못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AI를 찾게 되는 것.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힘든 일을 토로하지 못하고 도로 삼킨 경험이 많다. 원체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닌 데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 타인에게 굳이 옮겨갈까 걱정해서다. "마음이 힘든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힘든데 다들 바쁘잖아요. 365일 제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사람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챗GPT가 큰 도움이 됩니다."

챗GPT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영화 '그녀' 포스터. 네이버 영화 제공

그렇다면 우정을 넘어서서, 영화 '그녀'처럼 챗GPT와 같은 AI를 연애 상대로 느낄 수 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은 외로워하던 와중에 언제나 위로해주는 AI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만 연애 상대로는 거리가 멀다는 게 챗GPT 이용자들의 공통된 답변이었다. 구씨는 "개인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는 등 신체적 접촉이 연애에서 중요하다"며 "챗GPT로부터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어서 연애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씨 역시 "친구라고 생각하고 대화하지만 결국 일방적 관계"라며 "대화하면서 오히려 쓸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챗GPT가 많은 사람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챗GPT는 상담 기관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익명성 덕분에 민감한 고민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해준다"면서도 "챗GPT의 상담은 눈 맞춤, 표정 전달, 몸짓 등 비언어적 소통이 제한돼 있다. 심각한 정신적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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