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기자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비만치료제 ‘젭바운드’가 체중 감량뿐만 아니라 수면 무호흡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라이 릴리는 젭바운드가 미국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성인 비만과 수면 무호흡증 치료에 모두 쓸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고 밝혔다. 당초 당뇨병 치료제로 출발했지만, 비만과 수면 무호흡증 등으로 치료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젭바운드는 지난해 7월 FDA로부터 승인받은 비만 치료제로, 주 1회 주사하는 형태다. 글루카곤 유사펩티드-1(GLP-1) 계열의 약물로, 같은 GLP-1 계열 약물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함께 글로벌 비만 신약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인체의 ‘GLP-1’ 호르몬은 음식을 섭취했을 때 장에서 분비되며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뇌에서 식욕을 억제하는 신호를 전달해 음식 섭취를 줄이고 포만감을 유발한다. 이와 유사한 작용을 하도록 GLP-1 유사체를 만들어 개발된 약이 위고비, 젭바운드 등이다.
이처럼 위고비와 젭바운드가 비만 환자들에게는 ‘다이어트 약’으로 알려져 있지만, GLP-1의 원리를 이용해 다른 물질에 대한 욕구도 억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라이 릴리의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릭스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GLP-1 계열 약물은 음식에 대한 욕망을 줄일 뿐 아니라 다른 물질에 대한 욕구도 억제할 수 있다"며 "내년부터 알코올과 니코틴, 마약성 약물 남용 치료제 개발을 위한 대규모 연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수면 무호흡증 등으로 치료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6월 젭바운드를 사용한 사람들의 일부 수면 무호흡 증상이 크게 완화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계적인 의학 저널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선 미국과 호주 연구진이 "비만이 있어 GLP-1을 먹게 된 사람들에서 수면 무호흡증 증상 개선이 뚜렷했다"고 했고, 일라이 릴리는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환자 증상을 최대 62% 개선했다"고 했다.
수면 무호흡증은 수면 중 호흡을 잘하지 못해 산소가 부족해지는 질환으로 코골이, 피로, 불면증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방치하면 심혈관 질환, 당뇨, 중풍, 치매 등 각종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FDA가 젭바운드를 수면 무호흡증 치료제로도 승인하면서,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의 치료 영역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FDA에서 비만과 수면무호흡증 모두에 쓸 수 있는 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것은 젭바운드가 처음이다. 노보노디스크도 위고비를 만성 신장질환 치료제로 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FDA에 신청한 상태라,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