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영화 내용보다 제목이 더 유명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1989년에 개봉했다. 강우석 감독이 연출했고, 배우 김보성과 이미연 등이 출연한 영화다. 입시 문제로 고민하는 10대의 삶을 그려낸 작품은 그동안 많이 나왔는데 유독 이 영화가 각인된 이유는 무엇일까.
35년 전의 작품인데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인생의 철학이 담긴 영화 제목과 관련이 있다. 10대 후반의 나이 때는 입시가 세상 전부처럼 느껴진다. 입시의 터널만 건너면 인생에서 다시는 시험대에 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몇 해에 걸쳐서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입시의 그날을 위해 달려온 세월. 꿈과 희망으로 채워가야 할 10대의 기록은 경쟁과 좌절 그리고 부담감의 돌림노래로 점철된다.
어느 날 형성된 숫자 하나에 인생의 좌표가 결정된다고 여기는 이도 있다. 대학 입시 결과와 관련해 누구는 평생 우쭐한 기분을 느끼고, 다른 누구는 위축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현실은 많은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교육의 폐해도 부동산 광풍도 결국 입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세계 최하위를 달린다는 출산율 문제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27.1조원에 달한다. 사교육을 경험한 학생 1인당 월평균 비용은 55만3000원이다. 통계 결과보다 현실은 더 심각하다. 사교육의 대명사인 서울 대치동이나 목동에서 학생 1인당 매월 200만~300만원을 지출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입시 준비생이 있는 학부모 소득의 상당 부분을 사교육에 쏟아붓고 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자녀 있는 부모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며 자란 젊은 세대가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문제는 남들만큼 사교육에 힘을 실어봐야 자기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보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14일 치른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원서를 낸 이들은 52만2670명에 달한다. 그중에는 16만1784명의 졸업생도 있다. 이른바 ‘N수생’ 응시 인원은 21년 만에 최대라고 한다. 그 많은 인원이 대입 패자 부활전에 뛰어든 이유. 대학의 간판 하나만 바꾸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란 생각, 아니 확신 때문 아니겠는가. 입시 문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투영하고 있다. 교육 당국이 입시제도 하나를 바꾼다고, 사교육비 억제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수험생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입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인생이 자기 뜻대로 펼쳐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대학 입시 이후에도 수많은 시험대에 직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삶의 방향은 얼마든지 요동칠 수 있다.
입시 결과에 낙담하는 이도 있겠지만 인생의 기나긴 항로에서는 이 또한 지나가는 길일뿐이다. 그럼에도 이번 수능을 준비하며 땀과 눈물을 흘렸던 모두는 결과와 무관하게 축하와 격려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입시라는 고난의 터널을 경험한 그 사실 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은 한 뼘 더 성장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