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기자
금융권이 밀려드는 악재에 홍역을 앓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구조조정,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연체율 상승, 고정이하여신(NPL) 비율 상승, 임직원 횡령·부당대출 등 안팎으로 유쾌한 소식을 찾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자금난,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문제로 금융권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임직원 횡령사건, 부당대출, 연체율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예고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눈치 보기 바쁘다.” 취재원으로 만난 금융권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들은 “정부 재정이 어려우니 협조해야겠지만, 또 무엇을 요구할지…”라면서 애써 말을 줄이기도 했다. 정부의 건전성 제고 압박에 대해서는 “기준이 모호해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의 기조에 맞추겠다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NPL 커버리지 비율 등 지표를 현저하게 개선하려고 했다간 주주들의 이익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 섣불리 나설 수도 없다.
게다가 자초한 위험에 운신의 폭은 갈수록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너도 나도 뛰어든 부동산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중 적어도 21조원 규모의 사업장에서 부실이 확인됐고, 임직원 횡령사건과 부당대출 등 내부통제와 조직문화 문제에 기인한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특히 우리금융그룹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수백억원 대 부당대출 의혹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됐던 각종 금융사고에 대한 진단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했다.
컨트롤 타워인 금융당국의 행보는 위태롭고, 시계(視界)는 탁하다. 가계대출, 부동산 PF 등 정책과 관련한 정돈되지 않은 메시지가 시장에 던져진 탓에 금융소비자들의 혼란을 키웠고, 급격하게 늘어난 가계부채는 안정적 관리라는 정책 목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고금리 지속으로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성급한 금리인하 기대가 가계부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 “대출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유주택자 대출 중단에 대한 공감대는 없었다”, “은행권이 자율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금융권을 향한 발언은 금융정책과 감독을 책임진 수장들의 입에서 나왔다. 어느새 ‘좌충우돌’, ‘오락가락’, ‘관치’ 등은 이들 수장에게 붙는 단골 수식어가 됐다.
또한 단골 화두인 당국의 내부통제 강화에도 금융권에선 올해도 어김없이 임직원 횡령·배임사고에 대규모 부당대출 의혹, 대규모 불완전 판매 사태가 터졌다. 임직원 횡령·배임사고가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 대규모 부당대출 의혹이 우리은행에서 확인되면서 각종 재발방지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 여기에 홍콩H지수 ELS 불완전 판매로 인한 고위험 파생상품 규제 대책은 함흥차사다.
고위급 당국자였던 한 인사는 작금의 상황을 두고 금융권은 ‘지체’를 겪고 있고, 금융당국은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을 상실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지 모를 외부 위기에 구조적인 취약점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했다. 갖은 경험에서 나온 진단일 터.
18일(현지시간) 미국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했다. 금리 인하를 기다렸던 쪽에겐 호재지만, ‘경기위축’의 신호로 읽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중대한 변곡점에서, 되레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금융권과 금융당국의 행보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좋은 결과가 있을지 나쁜 결과가 있을지 알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