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다연기자
지난 22일 경기도 부천의 한 호텔에서 화재로 사망자 7명, 부상자 12명이 발생했다. 이번 화재에서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됐을 경우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소방시설 관리의 빈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재가 발생한 부천의 호텔은 8층짜리 건물이지만 2003년 준공돼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은 아니다. 2017년 개정된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스프링클러는 6층 이상의 신축 건물에 의무적으로 설치돼야 한다. 기존에는 11층 이상의 건물인 경우에만 적용됐기 때문에 그 이전에 세워진 건물의 경우 일부 의료기관 등을 제외하면 해당 법에 소급 적용을 받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 구축 건물의 경우 별도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다. 설치돼 있더라도 객실 흡연을 고려해 꺼두는 경우가 많아 화재에도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 관악구에서 20년째 모텔을 운영하는 박모씨(58)는 "소화기나 화재경보기는 있지만, 스프링클러는 따로 없다"며 "요즘 숙박시설에서 화재가 잦아지는 것 같아서 설치하고 싶어도 건물주는 따로 있으니 맘대로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근 모텔에서 일하는 김모씨(37)는 "30년 전에 건물이 세워졌다 보니 스프링클러 설치를 안 한 거로 알고 있다"며 "객실에서 흡연하는 손님도 많아서 있더라도 큰 의미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등 비상 상황에서 사람이 직접 접근하지 않고도 초기 대응이 가능해 중요성이 크다고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스프링클러 미설치로 인한 화재 피해는 꾸준히 반복돼왔다. 지난 6월20일 서울 강남구의 16층짜리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화재 진화가 쉽지 않았다. 당시 아파트 주민과 출동한 소방관들은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에도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던 부산 금정구의 한 구축아파트에서 불이 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더라도 작동하지 않는 경우 또한 문제다. 지난 1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에서도 스프링클러가 미작동해 피해가 커졌다. 당시 화재 수신기에 이상 신호가 관리됐음에도 아파트 관리자가 '스프링클러 준비 작동식 밸브 연동 정지' 버튼을 임의로 눌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 당국은 지속해서 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건물이 지어진 연도의 법을 따르기 때문에 안전에 큰 효과는 없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20년 전 지어진 건물이면 20년 전 법대로 점검하고 있다"며 "소방에서 1년에 두 번 점검에 나서더라도 소급되지 않은 기준임을 고려하면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사고가 수년간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의 소급 적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경우 쉽지 않기 때문에 아직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우선 국회에서 논의된 뒤 예산안 등이 확보돼야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부천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초기에 불을 잡지 못한 것이 인명 피해를 키운 큰 원인으로 보인다"며 "스프링클러가 의무 설치되지 않은 노후 건물에 대한 전반적인 화재 예방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방시설 관리를 위한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숙박업소의 경우 처음 방문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건물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에 대피가 어려워 화재 시 초기 진화가 특히 필요하다"며 "스프링클러가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설치 의무의 소급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도 "소방시설 자체는 발전해 나가는데 규정만 따지다 보면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며 "스프링클러 등 비상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