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원유 가격이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신(新) 석유수출국기구(OPEC) 카르텔이 최근 원유 감산 조치를 1년 연장하겠다고 합의했지만, 내년 하반기부터 감산 규모를 축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 탓이다.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7월 인도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60% 하락한 배럴당 74.2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2월7일 이후 4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8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3.4% 하락한 배럴당 78.36달러를 나타냈다. 지난 2월5일 이후 최저 가격이다. 이날 미국 정부가 전략비축유(SPR) 300만배럴을 배럴당 평균 77.69달러에 사들인다고 발표했지만, 유가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유가 급락을 이끈 요인은 주요 산유국들이 자발적 감산을 단계적으로 종료하기로 한 결정 탓이다. 지난 2일 OPEC+(OPEC과 러시아 등 산유국 연대체) 회의에서 감산 조치가 1년 연장됐음에도 공급량 전망은 긍정적으로 해석됐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8개 산유국이 할당 공식 감산 규모인 200만배럴을 내년 10월을 기점으로 점진적으로 해제하기로 합의하면서 앞으로 공급량은 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골드만삭스는 메모에서 “자발적 감산에 대한 단계적 폐지는 OPEC+ 회원국들의 생산량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뜻하기 때문에 유가에 하락 압력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전쟁을 끝낼 휴전안을 공개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에 수용을 촉구한 것도 유가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제 유가는 중동 및 우크라이나 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수요 둔화 조짐에 4월 초부터 하락세를 보여 왔다. OPEC+ 회원국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가 원유 할당량을 계속해서 초과 생산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이 석유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유가 약세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WTI는 브렌트유 등 타 생산국 원유 대비 약 5% 저렴하게 형성돼 있다. 미국이 지난해 하루 1300만배럴을 웃도는 원유를 짜내며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거듭난 결과다. 최근 미국 셰일오일 업계에서는 인수합병(M&A) 붐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이 경우 생산 비용을 낮춰 유가가 더 하락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오는 11월 세계 최대 이벤트인 미국 대선이 있는 만큼 큰 폭의 유가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과 직결되는 만큼 이를 잘 관리하는지 여부가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反) 화석연료 기조를 보이고 있지만, 재선을 노리는 만큼 적어도 이 기간 자국 업계 생산에 제동을 걸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