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순기자
임온유기자
농심이 지난해 6월 선보인 '먹태깡'은 올해 3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2000만봉을 돌파했다. 출시한 지 5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말 1000만봉을 넘어선 데 이어 4개월 만에 1000만봉이 더 팔린 것이다. 이 제품과 맛·성분이 비슷한 롯데웰푸드의 '오잉 노가리칩 청양마요맛'도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4개월여 만에 누적 판매량 1000만봉을 돌파했고, 이후 두 달 동안 500만봉 가까이 추가로 팔리며 속도를 높이고 있다. 농심과 롯데웰푸드는 현재 각 제품의 생산라인을 풀 가동하며 수요를 맞추고 있다.
이들 제품은 이른바 '어른 과자'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회사 매출 증대에 기여하고, 다른 경쟁사에서 유사 스낵을 출시하는 데 불을 붙였다. 식품사들 입장에선 달가울 만한 성과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저출산의 여파로 과자류의 주 소비층인 아이들이 줄면서 구매력이 있는 성인들을 겨냥한 '안주용 스낵'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 결과인 탓이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과 시장에서 '과자는 어린이를 위한 상품'이라는 인식이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내국인 인구성장률도 2025~2035년 연평균 -0.26% 수준에서 2042년 -0.44%까지 감소 폭이 커질 전망이다. 2020년 5184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한국 인구는 2070년 3766만명까지 주저앉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미 내수시장은 포화 상태인 데다 먹거리를 소비하는 인구가 감소할 것이 자명하다 보니 식품 제조사를 비롯한 유통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됐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을 생산해도 '입(인구)'이 줄어들고, 판매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제조사는 물론 판매 채널까지 실적이 연쇄적으로 감소하는 동반 침체의 굴레에 놓여있다"고 짚었다.
생존이 곧 화두가 된 식품업계는 어린이 대신 성인을 타깃으로 하는 제품 연구개발(R&D)로 활로를 모색하는 한편, 인구가 많고 성장 잠재력이 큰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성과를 내고 있다.
27일 아시아경제가 스낵과 빙과, 냉동식품, 라면 등을 생산하는 주요 제조사의 최근 10년 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연간 전체 매출 가운데 해외 비중이 평균 2~3배에서 최대 10배 가까이 증가한 기업의 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보다 해외 성적표가 두드러진 제조사도 있다.
대표적으로 오리온은 201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매출(연결 기준) 가운데 해외 매출 비중이 매년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오리온은 중국과 베트남, 러시아, 인도 등 4개 국가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11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이들 해외법인의 매출액은 총 1조8547억원으로 전체 매출 2조9124억원의 63.3%를 벌어들였다. 주력인 초코파이와 생감자 스낵 등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결과다.
롯데웰푸드도 인도와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벨기에, 러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등 7개국에 8개의 해외법인을 두고 초코파이와 빼빼로를 비롯해 캔디, 비스킷,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이 회사의 제과 부문 해외 매출은 2014년 5703억원에서 지난해 8005억원으로 약 30% 증가했다.
2022년 롯데제과가 롯데푸드를 합병하면서 롯데푸드가 전담했던 식품사업부문의 부진으로 롯데웰푸드의 전체 해외 매출 비중은 기존 20%대에서 10%대 후반으로 떨어졌으나 제과 매출로만 보면 지난해 해외 비중은 전체의 31%로 상승했다. 향후 해외법인을 통한 실적 개선에 나서 2027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30~5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당장 세계 1위의 인구 대국 인도 시장을 공략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지난 1월에는 빼빼로의 첫 번째 해외 생산기지로 인도를 낙점하고 현지 법인인 '롯데 인디아' 하리아나 공장에 21억루피(약 330억원)의 신규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이 밖에 국내 식품업계 매출 1위인 CJ제일제당은 주력 브랜드 '비비고'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 식품 사업 매출이 2018년 6748억원에서 지난해 5조3861억원으로 약 8배 증가했고, 같은 기간 해외 매출 비중도 12.8%에서 47.8%로 커져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빙그레도 냉장·냉동 제품을 포함한 수출액이 2014년 460억원에서 지난해 1253억원으로 3배가량 늘면서 10년 새 해외 비중이 5.6%에서 10.5%로 상승했다.
라면 업계도 인구 감소로 주요 소비층인 10~20대를 잃어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매점 기준 라면 총 매출액은 2조1623억원으로 1년 전보다 7.3% 줄었다. 주요 제조사들이 밀가루 등 원자재 가격 부담 증가에 따라 2022년 하반기 일제히 라면값을 올렸는데도 매출이 꺾인 셈이다. 라면은 '불황형 소비'의 대명사인 만큼, 경기 침체보다는 소비 인구 감소 등이 내수 판매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라면 업계는 새로운 소비층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영토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나 라면은 K-콘텐츠 열풍에 따른 K-푸드 인기를 주도하면서 단기간에 해외 소비자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간편식 수요 증가와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도 K-라면의 인기를 키운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그 결과 삼양식품의 경우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해외 매출 비중을 2014년 7%에서 지난해 68%로 급격히 끌어올렸다. 이 기간 수출액은 223억원에서 8093억원으로 40배 가까이 불어났다. 불닭볶음면이 매운 라면의 대명사가 되면서 매출 2000억원대로 고전하던 삼양식품은 대표적인 수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신라면과 영화 '기생충' 속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로 이름을 알린 농심도 해외 매출 비중이 2014년 19%(3778억원)에서 지난해 37%(1조2515억원)로 빠르게 확대됐다.
이들은 앞으로도 '해외 시장 점유율 확대'를 최우선으로 둔다는 방침이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올해 목표로 식품 분야 글로벌 상위 100대 기업 진입을 목표로 뒀다. 이병학 농심 대표는 2030년까지 미국 시장 점유율을 1위로 끌어올린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농심, 삼양식품과 함께 국내 라면 3사로 꼽히는 오뚜기는 아직까지 해외 매출 비중이 10% 미만으로 미미하지만 올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확장을 노리고 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신년사에서 "'보다 앞선 식품으로 보다 앞선 기업'이 되는 글로벌 오뚜기가 되도록 전진하자"라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오뚜기는 함 회장의 사돈인 김경호 전 LG전자 BS유럽사업담당 부사장을 글로벌사업본부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식품 제조사들이 인구 감소라는 불가피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발 빠르게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성장 동력을 찾아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대내외 변수를 고려한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K-콘텐츠를 통해 소개된 국내 식품들이 해외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격과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춰 인기를 끌었다"면서도 "여러 제조사에서 내놓는 제품군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레드오션'인 데다, 박리다매 방식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상품의 특성상 해외에서도 가까운 미래에는 수익성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대체식품 개발이나 맛과 원료를 차별화한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고, 검증된 식당이나 상품과의 협업을 통해 이색 제품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식자재 유통 등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을 강화하거나 바이오 등 이종 산업에 진출하는 식품기업의 최근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