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기나긴 고물가 터널 속 토플(TOEFL)·토익(TOEIC) 등 어학시험의 응시료가 크게 올라 취준생·직장인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어학시험은 대학 졸업이나 취업·승진에서 필수 요건으로 사용되지만 성적 유효기간이 2년에 불과해 때마다 치러야 하고 원하는 성적이 도달할 때까지 반복해서 응시해야 하는 만큼 수험생들의 한숨이 크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까지 급등한 가운데 국제공인영어시험인 토플의 1회 응시료는 31만원을 넘겼다. 토플 응시료는 달러 환율에 따라 변동되는데 지난 18일 기준 토플 접수 비용은 한화로 약 31만6000원이 든다. 토플 응시료는 2022년 200달러에서 220달러로 오른 뒤 별도 인상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응시료가 28만원가량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응시료가 간접적으로 11%가량 오른 셈이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한국 수험생들의 토플 응시료 부담은 커지고 있다.
일부 어학시험 주관기구들은 물가상승으로 인한 제반 비용 증가를 이유로 응시료를 인상하기도 한다. 가장 흔한 공인 영어시험인 토익은 지난 15일 기존 4만8000원에서 5만2500원으로 3년 만에 응시료를 9.3% 인상했다. 또 다른 '취준생 필수 스펙'으로 분류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경우 지난해 67회 시험부터 심화 2만7000원, 기본 2만2000원으로 이전보다 응시료를 각각 5000원, 4000원 올렸다.
다른 외국어 자격증도 응시료가 꾸준히 오르는 모습이다. 2022년 응시료를 인상한 중국어시험인 신HSK(한어수평고시)는 급수별로 3만5000~13만원, 일본어능력시험(JLPT) 5만~6만5000원이다. 프랑스어 능력 자격시험인 델프(DELF)는 14만7000~34만원이다. 러시아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인 토르플(TORFL)은 16만~22만원의 응시료가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전문직 자격증 응시료도 올해 들어 가격이 올랐다. 관세사 시험료는 기존 1·2차 통합 2만원에서 각각 3만원으로 가격이 인상됐다. 세무사는 1·2차 통합 3만원에서 각각 3만원으로 올랐다. 세무사 준비생의 경우 영어과목이 공인 어학시험으로 성적이 대체되는 만큼 토플, 토익, 텝스 등의 성적이 필요한데 자격증 응시료가 이중으로 들게 된다.
공익 어학시험의 성적 유효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는 점도 수험생 부담을 높이는 부분이다. 토익 등 어학 성적은 취업·진학·승진 등에 활용되는데 짧은 유효기간 탓에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만큼 취업준비생들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이직을 목적으로 토익시험을 준비 중인 직장인 한지혜씨(27)는 "응시료가 크게 오른 데 비해 발표 일자를 하루 앞당긴 게 이해가 안 된다"며 "토익은 상대평가고 난이도도 매번 달라서 고득점을 위해선 여러 번 봐야 하는데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어학성적이 커리어 향상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상황 속 취준생들의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일부 시험에 한해 성적 인정 기간을 확대했다. 2년마다 성적을 갱신해야 했던 수험생들의 경제·시간적 부담을 경감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노무사 일부 국가자격증 시험에서 토익시험의 유효기간을 기존 2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또 어학성적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 인사혁신처의 사이버국가고시센터에 등록하면 최대 5년간 이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인 '어학성적 사전등록제도'를 확대했다. 따라서 지방공공기관 채용시험에서는 토익 등 영어 시험을 비롯해 JPT(일본어능력시험), 신HSK 등 공인 어학시험 성적 인정 기간이 기존 2년에서 5년까지 확대 인정된다.
일부 지자체는 청년에게 자격증 응시료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 중이다. 인천시는 18~39세 청년을 대상으로 국가기술자격증, 국가전문자격증, 국가공인민간자격, 한국사 및 어학시험 등의 자격증 시험에 대해 연 1인 1회, 최대 10만원을 실비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 또한 서울 금천구, 광진구, 강북구, 중랑구, 양천구, 성북구 등도 미취업 청년들을 대상으로 응시료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