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엄마' 검사의 끈질긴 수사…'신생아 학대 은폐' 덜미

안세영 검사, 1년 추가 수사로 증거 확보
병원장 등 범행 감춘 12명 기소

2021년 2월 부산의 한 산후조리원. 태어난 지 19일 된 아기의 귓등 쪽 피부가 찢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모의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병원 관계자들은 일제히 '실수'라고 했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사건을 넘겼지만 검찰은 1년간의 추가 수사를 통해 아기가 새벽에 울고 보챈다는 이유로 간호조무사가 CCTV 사각지대로 데리고 가 귀를 마구 잡아당기고 비틀어 상처를 낸 고의 범죄임을 밝혀냈다. 또 재판 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검사가 끈질기게 수사한 끝에 조리원에서 간호조무사의 아동학대 범행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도 드러났다. 병원 관계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핵심 증거물이었던 피 묻은 배냇저고리를 버리고 간호기록을 위조하는 등 범행을 감췄다. 검찰은 지난달 말 신생아 학대 은폐에 가담한 병원장 등 12명을 모조리 기소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3년 만의 일이다.

안세영 서울서부지검 검사.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에서 '부산 신생아 학대 은폐 사건'을 직접 수사한 안세영 검사(34)를 만났다. 그는 올해 초까지 부산지검 서부지청에서 근무하다 최근 인사발령으로 근무지를 서울로 옮겼다. 당시 공판부 소속이었던 안 검사는 "사건 경위가 너무 이상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최초 학대 행위자가 수간호사에게 보고했을 땐 '제가 귀를 당겼어요'라고 돼 있었다"며 "피해자 부모가 가져온 의사 소견서에도 '면봉에 의한 상처로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귀를 당겼다'는 학대 행위자의 최초 보고는 경찰의 초기 수사 단계에서도 이미 확보된 증거였다. 하지만 학대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CCTV 영상 등 물증이 부족해 경찰은 과실범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해당 사건의 재판에서 관련 기록을 살펴본 안 검사는 고의 학대 및 범행 은폐를 의심했고, 마침 그가 수사 담당 부서로 옮기게 되면서 학대 행위자뿐만 아니라 병원 관계자들로 범위를 넓혀 수사를 개시했다. 사실상의 재수사였다.

수사는 쉽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병원 관계자들은 이미 증거물을 없애고 관련 기록을 위조한 상태였다. 안 검사는 "(새벽에 발생한 학대 상처를) '목욕하면서 태지(태아의 피부를 싸고 있는 물질)를 제거하다 발생한 사고'라고 해야 하니까, 사건 발생 시간을 조작하려고 (병원 관계자들이) CCTV 녹화 영상을 시간대별로 분석해 동선을 다 외워서 수사를 받았다"며 "배냇저고리 폐기 등 범행이 대담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신생아 학대 사실이 드러나면 병원의 존폐가 위협받을 수 있었던 만큼 범행 은폐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위조된 간호기록부가 오히려 수사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 검찰이 확보한 CCTV 영상과 간호기록부를 비교하다 오류를 찾아낸 것이다. 안 검사는 "검찰수사관들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며 "신속한 압수수색으로 위조된 기록물을 확보했고, 밤새 CCTV 영상을 확대해 돌려보다가 다르게 체크된 것을 발견해 수사에 결정적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결국 신생아 학대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한 산후조리원의 병원장과 수간호사 등 12명은 지난달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공교롭게도 해당 산후조리원에서는 2022년에도 신생아 낙상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초기에 부모에게 바로 알리지 않아 은폐 논란이 일었다. 안 검사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수간호사가 낙상 사건의 피의자와 동일 인물"이라며 "그 사건도 은폐를 시도하다가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알렸었는데, 2021년도에 사건 조작이 쉽게 되니까 또 범행을 은폐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부실 수사가 또 다른 유사 범행을 낳은 셈이다.

이 사건 수사 당시 안 검사는 6년 차 검사이자 갓 출산한 엄마였다. 지난해 1월 첫 출산을 하고 여름께 복직해 맡게 된 사건이었다. 안 검사는 "저도 부산에서 출산해 산후조리원을 이용했었다"며 "조리원 시스템을 경험해본 것이 수사에 도움이 됐다"고 미소를 보였다. 아울러 "피해 아기의 부모는 30대 후반이었고, 어렵게 가진 늦둥이라고 들었다"며 "3년이나 외로운 싸움을 해왔는데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 점이 약간의 위안이라도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회부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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