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수습기자
오지은수습기자
비례대표제는 제6대 국회 때인 1963년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사표(死票)를 줄이고 직능별·지역별 다양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를 통해 탈북민 등 지역적 기반이 불분명한 후보도 국회 진입이 가능했고, 군소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반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영 논리를 앞장서 대변했다. 원래 도입 취지와 관계없이 지역구 의원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특히 최근 들어서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16명 중 13명(81%)이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다. 그중 7명은 '친명'임을 강조하며 비명계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자리 잡은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 역시 22명 중 15명(68%)이 지역구 출마를 공식화했거나 준비 중이다. 비례대표 의원의 74%가 지역구에 출마한다.
총선에 도전하는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들 대부분은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에 도전한다. 민주당 장철민 의원 지역구인 대전 동구에 도전하는 윤창현 의원, 민주당 진선미 의원(서울 강동갑)에 도전장을 낸 전주혜 의원, 민주당 황희 의원(서울 양천갑)에 도전하는 조수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조명희 의원은 대구 동구을(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현역), 최연숙 의원은 대구 달서갑(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현역)에 출마했다.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상황이 좀 다르다. 13명 중 8명이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 곳에 출사표를 던졌다. 김병주 의원은 김한정 의원(경기 남양주을), 김의겸 의원은 신영대 의원(전북 군산), 이수진 의원은 윤영찬 의원(경기 성남 중원)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친명(친이재명)'을 자처하며 '비명'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에게 도전한 경우가 많다. "이재명 대표와 정치적 고락을 같이했다"고 말하는 양이원영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비명계 양기대 의원을 '민주당답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비판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도전이 이어지다 보니 비례대표가 지역구 의원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가 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당수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로 넘어가기 위해 비례대표를 하는 것 같다. 생환(지역구 당선자) 비율은 높지 않지만,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 불투명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신 교수는 "상징성 있는 후보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비례대표 후보 순번을 어떻게 매기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으로서 정무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후보가 비례대표 앞 순번을 받아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기능적 다양성만을 추구한 탓에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비례 의원이 국회에서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는 "전문성과 다양성을 가진 비례대표는 국회에 필요하지만, 정무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기능적인 다양성만을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를 직능별로 배정해서 국회에 입성했는데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인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부정적인 평가 때문인지 비례대표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지난해 4월 한국행정연구원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비례대표 의석을 현재보다 줄이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1.1%였다. 현재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 의견은 31.1%의 응답률을 보였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17.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