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中 인재 사관학교' 전락한 K-제조업

철강 등 韓 기업 진출로 성장한
중국 산업일꾼들 역습 현실화

포스코 내부에선 중국에 구축한 현지 생산공장을 '철강 사관학교'로 부른다. 포스코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도 전인 1990년대 중반 중국 기업과 합작해 스테인리스스틸(STS) 냉연과 열연공장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현지 곳곳에 조강(철강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당시 철강 불모지에 시장 선점을 위해 뛰어든 것이다. 그 과정을 보고 배운 인재들이 포스코를 떠나 중국 철강업계를 견인하기 시작했다.

'철강 사관학교'라는 별명에는 포스코의 자부심이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포스코에서 키운 중국 인재들이 자국 산업 곳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스승인 포스코를 오히려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면서 붙여진 별명이기 때문이다.

중국산 철강제품은 포스코가 생존까지 걱정해야 정도로 심각한 수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많다. 회사 관계자는 "조선산업이 반짝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자동차 역시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철강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고 불안한 판로를 걱정했다. 중소기업들은 중국산을 쓰고 대기업들은 수요를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873만t으로 전년대비 30% 가까이 늘었다. 철강제품의 기본인 열연강판의 중국산 수입 역시 지난해 11월 기준 20만t 이상 늘어난 130만t에 근접했다. 열연강판 t당 가격은 국산과 비교해 중국산이 10만원가량 저렴하다. 그렇다고 품질이 과거처럼 떨어지지도 않는다.

포스코는 지난해 3월 공시한 '2022년 사업보고서'에서 중국산 제품 위협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바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철강 공급 과잉으로 최근 5년간 가동률이 80%에 못 미친다고 소개하면서 "중국 철강산업 구조조정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품 가격 하락과 수익성 악화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포스코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다"고 적었다.

포스코를 거친 중국 인재들은 철강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섭렵했다. 포스코 내부에선 중국 진출 당시 조강을 제외한 가공과 유통공정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시장선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부터 판매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체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엔 25년 전 중국 생산설비 구축 결정을 뒤늦게 후회하는 내부 목소리도 들린다.

중국산은 국내 중소기업들도 선호한다. 중국산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포스코의 지원도 외면할 정도다. 회사 고위관계자는 "칼라강판 개발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해도 기업들 반응이 미온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품목과 마찬가지로 철강 역시 한때 중국에서 이익을 챙기던 효자산업이었다. 1999년 포스코의 중국 장가항 아연도금강판공장에선 100만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할 정도였다. 20년이 훌쩍 지난 2022년, 포스코가 중국에서 벌어들인 매출액은 7조4306억1900만원으로 성장했지만 536억6800만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실적도 크게 바뀐 것이다.

중국 좋은 일만 시킨 인재사관학교는 비단 포스코에 국한된 건 아닐 것이다. 반도체 등 다른 산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이 키운 중국 산업일꾼들의 역습이 현실화되고 있다.

산업IT부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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