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나영기자
8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BNK·DGB·JB)가 2조원 규모의 자영업자·소상공인 금리 인하 방안을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은행권은 이자 감면 혜택을 보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이 신규대출자는 물론 기존대출자까지 대폭 확대될 것이라 예상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0일 8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고금리를 부담하고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등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코로나 종료 이후 높아진 '금리부담의 일정 수준'을 '직접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했다. 이에 따라 8대 금융지주는 전국은행연합회 주도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책은 은행권에서 종종 나오긴 했다. 다만 대상을 한정 짓거나, 간접적인 방안이 대부분이었다. 이달 초 나온 건 '7% 이상 금리를 내는 차주에게 최대 3%포인트 금리를 인하해주거나(신한은행)', '일정 기간 약 11만명이 납부한 이자 중 약 665억원을 '캐시백' 형태로 환급(하나은행)'해주는 방식이었다. 올해 3월에는 '연체 소상공인의 원금 일부 깎아주거나(우리은행)', '영세사업자에 대한 운영비용 긴급 지원(국민은행)'. '저금리 대환대출과 신규대출 보증지원(은행연합회 공동) 방안'도 나온 바 있다.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번 간담회를 앞두고 금융지주들이 상생안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지만, 이를 반려하고 연말까지 새로운 안은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를 들어 지금까지 금리 7%인 자영업자에게만 이자를 깎아 줬다면, 앞으로는 6%, 5%대 차주까지 대상을 넓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소상공인이 은행 종노릇을 한다'고 발언한 이후 금융당국이 나선 만큼, 신규대출은 물론이고 기존대출까지 이자 감면 혜택이 돌아가야 소상공인들이 골고루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통신비를 깎아준 것처럼 금융당국도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다음 달부터 금리를 몇%포인트를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보편적인 지원을 하라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2월에도 윤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발언 이후 국정 지지율이 올라갔다"며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은행권을 통해 전례 없는 자영업자 지원책이 마련돼야 표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원 규모는 2조원 수준이 유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4일 발의한 '횡재세' 법안을 참고한 것이다. 횡재세는 은행들에게 '상생금융 기여금' 명목으로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올해 은행권이 내야 할 부담금은 약 1조9000억원이다.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횡재세를 최소한 이 정도는 바라고 있다는 걸 금융지주사들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 금액에 준하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셈이다.
금융당국과 윤 대통령이 압박에 나선 것은 은행들이 금리인상기에 이자장사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은행들의 1~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9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조4000억원(38.2%) 증가했다. 1~3분기 이자이익(매출 개념)은 44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조6000억원(8.9%) 증가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고금리 차주들에게 혜택을 많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지원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라며 "은행들이 고금리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결정하느냐, 이자를 얼마나 깎아줄 것이냐가 지원책의 관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