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과 장작]<제5화·끝>4개의 배터리

185억 고물 ‘K태양광’ 방치
베트남 꽝빈성 ODA 현장을 가다

[전편요약] 취재진은 지난 10월 7일부터 14일까지 베트남 중북부 동허이 꽝빈성 반 라오콘(Ban rao con) 마을을 찾았다. 한국 정부가 해외 원조 명목으로 185억원을 들여 2015년 착공, 2019년 유지보수를 끝낸 태양광 기기 10대는 모두 고장 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2015년 설치 1년이 안 돼 모든 장비가 불능이 됐다고 밝혔다. 취재진은 현지 하청업체를 만난 후 책임자 추적에 나섰다. 이 사업에 관여한 KT와 수출입은행의 이야기를 듣고 반론도 실었다. 그리고 다시, 못다 한 취재기록을 정리한다. 호티번과 호티담의 이야기다.

반 라오 콘 주민 호티번(Ho Thi Von) 씨가 박스를 찢어 부채로 쓰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호티번(Ho Thi Von·64세)씨가 골판지 박스를 찢었다. 침대 밑에 있던 공구 상자의 귀퉁이였다. 부채 삼아 흔들며 바람을 일으켰다. 취재진도, 호티번씨 집에 놀러 온 호티랑(Ho THi Rang·30세)씨도 “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선풍기를 못 쓰면 여름에 어떻게 하세요?”라고 묻자 그는 답 대신 즉석에서 바람을 만들었다.

그는 폭염이 제일 불편하다고 했다. 반 라오 콘 마을의 7·8월 최고 기온은 40℃를 육박한다. 선풍기는 불능이다. 고장 난 태양광 패널은 차량용 배터리로 충전한다고 해도 선풍기를 회전할 에너지는 못 만든다. 주민들은 열대야에 고상 가옥 문을 다 열어놓고 잔다. 유행처럼 뎅기열을 앓는다. 대화 도중 호티번씨의 딸이 아이스박스에 얼음주머니를 집어넣었다. 1시간 30분 떨어진 동허이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져왔다.

호티번씨가 박스를 들더니 한마디 더 보탰다. “이걸로 모기도 잡아요.”

호티번씨 집엔 아이들이 많았다. 고상 가옥 기둥과 기둥 사이 걸어놓은 해먹에 누워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반 라오 콘 주민 호티번(Ho Thi Von) 씨 집의 손자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태양광과 장작]<제2화>한꾸옥 편의 주인공 호티담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할머니, 너무 더우면 어떻게 하세요?”

“나뭇잎을 엮어 부채로 쓰지”

“부채는 지금 어디 있어요?”

“만들었다가 계절이 지나면 쓰고 버리지. 여름이 오면 만들고. 그러니까 지금 없지. 하하하.”

“전기가 들어오면 뭘 제일하고 싶으세요?”

“상상이 안 가네. 그저 나는 빛이 있었으면 좋겠어, 빛. 그거면 돼.”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호티담(Ho Thi Dam)씨가 집 뒤뜰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호티담씨는 마을 평상에 앉아 통역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차량용 배터리를 살 돈은 없어서. 헤드 랜턴을 쓰고 있어.” “마을 이장 땅을 빌려서 이 집을 지었어.” “공부를 제때 안 하면 인생에 그믐이 오고, 다시는 밝아지지 않아. 나는 글을 못 읽어서 시내로 가면 다 물어봐야 해.” “자식들한테 그래서 꼭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가르쳐.”

담소를 풀어놓던 그가, 보여줄 것이 있다며 취재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가 이끈 곳은 집 마당 안쪽 위치한 직사각형 태양광 패널 두 개가 붙은 태양광 발전기였다. 판넬 위론 시든 바나나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모듈 사이사이로 먼지도 수북했다.

축대가 세워져 있는 바닥과 주변은 잡초가 없었다. 땔감도 한구석에 정리돼있었다. 패널 주변 바닥을 쓸고 닦은 티가 역력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은 발전기일 거야.”

호티담씨는 태양광 패널 아래 철제함 문을 열었다. 태양광 패널용 배터리 4개가 보관돼 있었다. 차량용 배터리보다 2배는 컸다

2017년 한국이 지어준 태양광 발전기가 작동을 멈추면서, 고장 난 전지들은 사라졌다. 외지인이 팔거나, 하청업체에서 떼어다 가져갔다. 반 라오콘 마을에서 호티담씨만 배터리를 지키고 있다.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호티담(Ho Thi Dam)씨가 집 뒤뜰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 배터리함을 보여주며 모든 설비가 그대로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왜 안 파셨어요?”

“내 것이 아니니까. 한꾸옥에서 받은 거잖아.”

호티담씨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왔는데, 배터리가 어디 있냐고 물으면 어떡해. 자식들한테도 절대 팔지 말라고, 나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했어.”

그는 다시 조심스레 전지함의 철제문을 닫았다. 잘 닫혔는지 재차 확인했다.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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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2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정치부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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