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금 곳간 채운다'…공적자금관리기금 322조 역대 최대 편성

2024년 공자기금 284.7조→322.8조
기재부, 예산안 심의서 "공자기금 더 내라"
지난 정부 방만경영에 구조적 적자 커져
향후 세수부족 심화시 활용할 여지도 생겨
"세수 해결에 쓰면 정부 기조 모순" 지적도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마련하면서 ‘공공기금 저수지’로 불리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을 역대 최대인 322조8000억원으로 편성했다. 2024년도 예산 656조9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기획재정부가 기금재원이 넉넉한 부처들에게 공자기금 예탁금을 대폭 늘리라고 요구한 결과다. 이는 기금의 건전화를 도모하되 필요에 따라 세수부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30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재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내년도 공자기금을 322조8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올해 공자기금 284조7000억원에서 38조1000억원(13.3%) 증액했다. 공자기금은 2020년 한 번에 100조원가량 증액한 268조7000억원으로 결정된 이후 계속해서 줄어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예산을 편성한 올해부터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공자기금이란 여러 기금에서 차출해 별도로 모아둔 기금이다. 재정상황이 열악해진 다른 기금에 투입하거나, 국채발행 및 상환에 쓴다. 기금의 기금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공기금의 저수지라고 일컫는다. 기금의 여유분을 민간에 예탁하면서 생기는 공공자금 왜곡현상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관리주체는 기재부로 1년이 지나면 이자를 붙여 원래 기금에 상환한다.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기금이 넉넉한 부처에 공자기금 예탁금을 대폭 늘리라고 요구했다. 산재보험기금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와 동일하게 산재기금에서 1조5500억원을 공자기금에 맡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재부는 해당 안을 반려하고 1조7500억원(112.9%) 증액한 3조3300억원 제안했다. 공자기금은 원칙적으로 각 기금이 결정하지만 전쟁·재해·대량실업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할 때 기재부 장관이 요청할 수 있다.

늘어난 적자에 공자기금도 ↑…세수부족 해결에 활용할까

기재부가 공자기금을 확대 편성한 배경에는 적자 문제가 있다. 공자기금은 문재인 정부 시절 재정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하면서 수지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가령 고용보험의 경우 적자가 심해지자 공자기금으로부터 2년여간 10조원이 넘는 공자기금을 끌어다 썼다. 공자기금을 정부 재정부담 경감에 쓴 셈이다. 이에 따라 공자기금 수지는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적자로 전환됐다. 올해 공자기금이 차입금으로 내는 이자만 19조2156억원에 달한다.

2021년 10월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공자기금의 성격상 적자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지나칠 경우 기금운용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국회의원 신분이던 2021년 10월6일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홍남기 당시 부총리에게 “공자기금이 자금을 너무 끌어쓰니 이제는 새로 받는 돈보다 상환할 것이 커져 가용재원이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며 “이 경우 다른 기금에서 추가로 자금을 더 받아야 해 개별 기금의 수지가 악화되거나 각 기금 고유사업 축소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올해 18개 기금 60개 사업에 구조조정을 권고하는 등 개선 노력에 나섰지만, 누적된 적자가 커 올해도 공자기금을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종 의무지출들이 늘어나다보니 공자기금에서 빌려가는 것들이 구조적으로 많아지고 있다”면서 “내년에도 사정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공자기금의 적자규모는 올해보다 작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별 기금 운용에 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금이 넉넉한 곳에서만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세수부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공자기금을 늘렸다고 진단했다. 올 상반기 국세수입은 178조5000억원이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39조7000억원이나 적다. 기재부는 하반기 세수결손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 국세수입 전망 역시 올해보다 33조원 넘게 줄어든 367조원으로 예상했다. 2년 연속 강한 세수불황 국면이 이어진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건전재정과 약자복지 등 과감한 재정집행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내년 공자기금 실탄을 넉넉하게 확보하면, 향후 세수부족으로 급하게 돈이 필요해질 때 꺼내 쓸 수 있다.

다만 공자기금을 세수결손 해결에 쓰면 부채축소를 강조하는 정부 기조와 모순된다는 지적도 있다. 공자기금의 주 목적 중 하나가 국고채 상환으로, 세수를 메우는데 수십조원을 투입한 전례가 없다. 또 세수 메우기에 돈을 쓰면 그만큼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세계잉여금과 기금 여유재원을 활용해 세수부족을 메우겠다는 답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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