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슬기나특파원
미국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2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와 주요 지표, 기업 실적 발표 등을 소화하면서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전날까지 13거래일 연속 상승했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도 차익실현 매물에 하락세로 전환, 랠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채 금리는 급등했고 달러화 가치도 뛰어올랐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장보다 237.40포인트(0.67%) 하락한 3만5282.72에 거래를 마쳤다. 블루칩으로 구성된 다우지수는 전날까지 13거래일 연속 랠리를 기록한 후, 이날 차익실현 매물이 몰리면서 하락장으로 돌아섰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29.34포인트(0.64%) 떨어진 4537.41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77.18포인트(0.55%) 낮은 1만4050.11에 장을 마감했다.
S&P500지수에서 통신 관련주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업종이 모두 하락 마감했다. 부동산, 유틸리티, 금융 관련주의 낙폭이 특히 두드러졌다. 전날 장 마감후 월가 예상을 웃도는 2분기 실적과 가이던스를 공개한 메타플랫폼은 전장 대비 4.40% 상승마감했다. 엔비디아, AMD, 퀄컴 등 주요 반도체주들도 1%안팎의 오름세를 보였다. 맥도날드와 컴캐스트 역시 이날 기대이상의 실적을 내놓으며 각각 1.18%, 5.69% 올랐다. 로열캐리비안 크루즈라인도 호실적을 공개한 후 9%가까이 뛰었다. 대표 크루즈주인 카니발은 3.23%, 노르웨이지안 크루즈라인 홀딩스는 2.7% 올랐다. 반면 유나이티드 항공(-2.40%), 델타항공(-1.46%) 등 항공주는 부진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발표하면서 8.94% 밀렸다. 치폴레 멕시칸 그릴도 전날 공개한 부진한 실적 여파로 10%가까이 내려앉았다. 허니웰은 5%이상 떨어져 다우지수 하락세를 견인했다.
투자자들은 전날 오후 FOMC 정례회의 결과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기자회견, 이날 오전 발표된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기업 실적 등을 주시했다. 이날 장초반만해도 기대 이상의 GDP와 연착륙 기대감에 상승세를 보였던 뉴욕증시는 이후 차익 실현 매물 등의 여파로 하락장으로 전환했다. BTIG의 조나단 크린스키는 "랠리가 지쳐간다는 신호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오전 공개된 미국의 2분기 GDP 증가율은 연율 2.4%로 집계됐다. 이는 1분기(2.0%)는 물론, 시장 전망치(2.0)도 상회한다. 미 상무부는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과 기업들의 비주거 부문 고정투자, 연방·지방 정부의 지출 증가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2분기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2.6% 상승해 시장 전망치(3.2%)를 크게 하회한 것 역시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1분기 상승률은 4.1%였다.
1년 이상 이어진 긴축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지표가 탄탄한 모습을 보이면서 연내 침체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가시는 모습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마이클 개펜 미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초 우리 모두를 겁먹게 했던 것들이 다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AC커트앤어소시에이트의 에이미 크루 커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위험한 코너를 돌았다"며 "경기침체에 크게 무게를 두는 대신 침체와 침체가 오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 공개된 실업지표도 미 노동시장이 탄탄함을 시사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7월16~22일)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 대비 7000건 줄어든 22만1000건을 기록했다. 3주 연속 감소세이자, 올해 2월 이후 5개월 만에 최소치다. 최소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전주 대비 5만9000건 줄어든 169만건으로, 지난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탄탄한 경제지표들은 Fed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블룸버그통신은 "경제가 너무 좋다면 Fed는 금리를 더 올려야만 할 것"이라며 "Fed의 의도는 경기침체가 아닌, 경제를 추세 이하의 성장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성장세가 강해질수록 금리를 더 인상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찰스슈왑의 리차드 플린은 "미 GDP는 강한 경제의 긍정적 신호지만, Fed 당국자들이 지속적으로 우려해온 인플레이션 압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Fed는 전날 금리를 기존 5.0~5.25%에서 5.25~5.5%로 0.25%포인트 인상한 상태다. 금리 동결로 ‘숨 고르기’에 나선 지 불과 한 달 만에 인상 행보를 재개한 것이다. 직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오는 9월 금리를 올릴 가능성과 동결할 가능성을 모두 열어놨다. 하지만 모호한 파월 의장의 발언에도 현재 시장에서는 Fed가 연내 추가 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현재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은 Fed가 차기 회의인 9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80%가량 반영하고 있다. 12월까지 현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도 60% 이상이다.
올해 남은 FOMC는 이제 9월, 11월, 12월 단 세 차례로, 다음 FOMC는 9월19~20일 열린다. 아메리벳 시큐리티의 그레고리 파라넬로 미국 금리전략 책임자는 "마지막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전날)이 마지막 금리 인상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한번의 추가 금리 인상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다음날에는 Fed가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PCE 가격지수도 공개된다. 미국의 6월 근원 PCE 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4.2% 올라 직전 달(4.6%)보다 둔화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Fed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정책금리를 4.00%에서 4.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9연속 인상이다. 특히 ECB는 이전과 달리 향후 금리인상 의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ECB의 금리인상 속도도 늦춰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음날에는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결정이 공개된다.
주요 기업들의 실적 발표도 이어지고 있다.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지금까지 S&P500 상장기업의 44%가 실적을 공개했고 이 가운데 78%가 매출 추정치를 상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장 마감 후에는 인텔이 실적을 발표했다. 2분기 주당순이익은 0.13달러로 당초 마이너스(0.03달러 손실)가 전망됐던 것과 플러스를 기록했다. 정규장을 강보합으로 마감한 인텔은 현재 시간외거래에서 6%대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이날 뉴욕채권시장에서 국채금리는 예상을 웃돈 GDP 공개 후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대를 돌파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금리는 4.92%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경제지표 호조에 달러화 가치도 올랐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달러화 지수)는 전장 대비 0.8% 이상 뛴 101.7선을 나타내고 있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10%가까이 치솟았다.
국제유가는 3개월 만에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1.31달러(1.66%) 오른 배럴당 80.0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화 가치가 올랐으나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