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기자
세계비즈니스엔젤투자포럼(WBAF)을 아시나요. 주요 20개국(G20)과 공식 파트너십을 맺은 비영리 기구이자 70여개 나라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엔젤투자 포럼입니다. 이곳에는 한국 위원(senator)이 2명 있습니다. 독일 시가총액 1위 기업인 SAP의 김형섭 상무와 김대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명예이사장입니다. 이중 김형섭 상무와 만나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스타트업의 현주소와 다양한 엔젤투자자의 근황에 관해 들었습니다. 이른바 '큰손 엔젤'들이 고수하는 투자 철칙과 후배 창업자를 향한 애정을 들여다봤습니다.
다음은 김 상무와의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독일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SAP에서 근무 중입니다. SAP는 1972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50년이 된 지금은 독일 시가총액 1위(215조원)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IT업계 종사자들에게 잘 알려진 회사로, 현대차 시총의 4배가 넘습니다. 저는 국내 기업 경영진들에게 글로벌 트렌드와 디지털 전환에 대해 설명하고, 사업에 적용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비즈니스엔젤투자포럼(WBAF)은 어떤 기구인가요.
▲국제 비영리 기구인 WBAF는 1년에 한 번씩 70여개 국가가 참여하는 세계 총회를 엽니다. 지난해 10월에는 터키에서 열었고, 올해는 11월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유엔(UN)총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엔젤투자뿐만 아니라 세계 균형 발전, 지속가능한 경영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위원들은 벤처캐피털(VC), 액셀러레이터(AC)와 같은 투자자뿐만 아니라 경제계, 공공기관, 학계 등 출신이 다양합니다. 분야별 세션에 참석해 그 나라의 경제, 정치, 사회, 환경 전반에 대해 공유하고 협업 방안을 찾습니다.
-해외에서 우리 스타트업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는 좋고, 국가경제 규모도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외에선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편입니다. WBAF 총회에 가면 다른 나라 위원들이 '한국에 혁신 스타트업이 있느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입니다.
-국내 스타트업이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떨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선 '해외 시장 진출은 업계 1위가 된 후에 추진하자'는 통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기업이 된 후 미국에서 IPO(기업공개)를 한 '제2의 쿠팡'의 길을 걷고자 하면 글로벌 성공 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야구선수 추신수씨처럼 해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차근차근 성장한 케이스도 있기 마련이에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유니콘이 된 센드버드가 좋은 예입니다. 글로벌 진출에 대한 우선순위를 높일 필요가 있어요.
-글로벌 진출을 위해 창업자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아직까진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이 영어를 잘해서 스타트업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건 아닙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도 될 것 같습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까 봐 불안해하기보다는 오픈마인드를 갖고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보길 바랍니다. 글로벌 소통 창구로는 '링크드인'을 추천합니다. WBAF에서 우리나라 스타트업을 해외투자자에게 소개했는데, 링크드인 페이지가 없는 기업이어서 의심을 산 적이 있습니다. 요새 해외에선 사람들끼리 명함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링크드인 계정을 교환합니다. 팔로워 수 1000명 정도 확보해야 신원이 분명해집니다. 링크드인은 글로벌 SNS이다 보니 한글 대신 영어를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챗GPT를 활용해 언어를 손쉽게 변환할 수 있습니다.
-엔젤투자 경험은 어느 정도인가요.
▲4년 전부터 초기 스타트업 30곳 이상에 투자했습니다. 개인투자조합에 일원으로 참여하거나 직접 단독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카이스트(KAIST) 동문으로 구성된 창업자 모임 KOC에서 활동하며 선배이자 멘토로서 자문도 해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내가 잘 아는 분야에 안정적인 투자를 했다면, 최근에는 극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위험성이 있다는 건 알지만 초기 기업일수록 투자의 영향력이 커서 재미를 느낍니다. 단순히 돈을 투자해서 수익을 창출하기보다는 성취감을 추구합니다. 투자자의 역량에 따라 기업의 방향성과 성장 폭이 많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엔젤투자를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나요.
▲한 엔젤투자자는 '창업자와 세 번 술을 마셔보고 결정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엔젤은 '창업자와 만난 지 6개월~1년 정도 지난 후에 투자한다'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저는 창업자의 문제 해결 능력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처음 세운 비즈니스 모델이 쭉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피봇팅(사업전환)을 잘할지 살핍니다.
-투자를 잘하는 팁을 주신다면.
▲초기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누가 투자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투자 경력이 오래된 슈퍼 엔젤이나 연쇄 창업자가 투자한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달리 보이는 거죠. 그런 분들은 본인의 명예와 위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투자할 때 더욱 깐깐하게 따집니다. 예를 들어 옥션 창업자인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님과 이윤재 지누스 회장님, 이용덕 엔비디아코리아 전 대표님은 활발한 재능기부로 스타트업 업계에서 존경받는 롤모델입니다. 이분들은 창업자를 상대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엔젤투자를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대학생 창업자 30여명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된 멘토링을 해주고 있습니다. 꿈과 열정이 가득한 창업자들을 만나면 저도 힘을 얻습니다. 중학생인 제 딸의 장래 희망도 창업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창업스쿨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본인이 직접 경험한 메타버스 세계에 대해 또박또박 이야기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창업을 하게 되면 제가 첫 번째 엔젤투자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