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환정치사회부문 조사팀 콘텐츠매니저
경남 통영시. ‘한국의 나폴리’로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도시다. 지난해 2월 통영시가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시내 4개 병원 가운데 유일하게 분만과 산후조리까지 수행하던 J 산부인과가 출생아 수 급감으로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현지 매체의 보도 이후부터다.
1995년 옛 충무시와 통영군을 합친 도농복합도시로 출범한 통영시의 면적은 240.2㎢. 일산신도시가 포함된 경기도 고양시에 조금 못 미치는 면적이다. 이 넓은 지역에 아이를 낳을 병원이 없어지면 다른 도시로 원정 출산을 가야 할 판이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이 병원을 ‘분만취약지 분만산부인과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통영시는 겨우 출산 불가능 도시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통영의 얘기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지방 중소도시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경남만 하더라도 분만 취약 시·군이 13곳이나 된다고 한다. 통영을 포함해 밀양·사천 등 시급 지자체도 3곳이 포함돼 있다. 의령·함양·고성군에는 아예 산부인과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조차 없다.
지방 인구 감소가 불러온 위기는 출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학이 시작되면 서울 대치동 일대에는 1~2개월짜리 단기 임대 시장이 열린다. ‘학원 1번지’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지방의 원정 수강생들이 몰려들면서 생기는 계절 특수다. 지방이라고 학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 만만치 않은 학원비도 모자라 숙박비까지 지불하는 현실이다.
지방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니다 대학을 마치는 지역 내 교육 순환 시스템은 이미 망가진 지 오래다. 지방 사립대는 물론 어느 정도 지역 인재를 흡수했던 지방 국립대조차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후라고 다르지 않다. ‘건강’은 은퇴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주 요건이다.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간 의료 서비스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나름 이름있는 지방 대도시의 종합병원조차 노후화한 장비와 양질의 의료진 부족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특히 중증질환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상당수 암 환자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다. 기자의 지인 역시 지방 대학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지만 결국 수년 동안 KTX로 서울을 오가며 암을 치료했다.
"여기 살면 어떨까?" 지방 여행 중 경치 좋은 곳을 발견하면 한 번쯤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꿈도 꾸지 마. 그냥 한달살기 하고 말라"는 핀잔이 되돌아온다. 좀 과장하자면 출산, 교육, 의료 등 거의 모든 것을 서울 원정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 개봉돼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영화가 있었다. ‘일본침몰(日本沈沒).’ 혼슈의 태평양 연안인 시즈오카현에 있는 스루가만에서 진도 10이 넘는 대지진이 발생해 열도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대한민국 역시 침몰 위기는 아닐까. 지반 침하라는 물리적 침몰이 아닌 인구 소멸에 따른 지방생활권의 침몰 말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지방은 텅 빈 채 수도권에만 사람이 몰려 사는 현실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정부가 온 힘으로 막아야 할 국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