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법조전문기자
어린이집 원장이나 보육교사가 아동학대관련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았을 때 행정청이 그 자격을 취소할 수 있게 한 현행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청구인들은 비록 형사재판에서 아동학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이 취업제한명령을 내리지 않은 경우에도 행정청이 재량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자격을 취소할 수 있게 한 건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관련범죄로 처벌을 받은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어린이집의 원장이나 보육교사의 자격을 취소할 수 있도록 정한 영유아보육법 제48조 1항 3호 중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로 처벌을 받은 경우에 관한 부분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어린이집 원장이나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범죄는 영유아의 신체·정서 발달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들의 자격을 취소해 보육 현장에서 배제할 필요가 크다"고 밝혔다.
또 "심판대상 조항은 임의적 규정으로 행정청이 재량으로 자격을 취소할 수 있다"며 "그 제한의 정도가 심판대상 조항이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해 중대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합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대구 달서구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던 정모씨와 최모씨는 2017년 6월 봉사활동을 나온 초등학생 18명에게 성소수자 혐오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여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돼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다만 법원은 두 사람에게 아동복지법 제29조의3(아동관련기관의 취업제한 등) 1항에 다른 취업제한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대구 달서구청장은 이들이 아동학대관련범죄로 처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정씨의 경우 어린이집 원장 및 보육교사 자격을, 최씨의 경우 보육교사 자격을 각각 취소하는 처분을 내렸다.
두 사람은 달서구청장이 내린 자격 취소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행정소송을 진행하면서 근거가 된 영유아보육법 조항들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재판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이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기각, 나머지 조항에 대해서는 각하 결정을 내리자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두 사람은 영유아보육법 제48조 1항 3호 전체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지만 헌재는 심판대상을 '정서적 학대행위'로 처벌을 받은 경우에 관한 부분으로 제한했다. 이는 일반적인 헌법소원과 달리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이 기각됐을 때 하는 헌법소원의 경우 위헌법률심판 청구와 마찬가지로 '재판의 전제성'을 요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두 사람이 진행 중인 자격취소 처분 취소소송의 결과(주문 내지 주된 판결이유 등)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률 조항들만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씨와 최씨는 헌법소원을 청구하면서 ▲아동복지법에 따른 취업제한명령을 면제한 형사판결에도 불구하고 행정청이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 자격을 취소해 어린이집 취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체계정당성에 반하며 ▲형사판결에 따라 아무런 제약 없이 어린이집에서 원장 또는 보육교사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신들의 정당한 신뢰를 침해하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형사재판의 결과를 무위로 돌아가게 해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체계정당성 위반은 위헌성의 징후일 뿐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 등을 위반해야 비로소 위헌이라고 인정된다"며 해당 조항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살폈다. 재판청구권 침해 주장 역시 실질은 법원에서 취업제한명령을 면제했음에도 행정청이 재량으로 자격취소를 할 수 있게 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과 동일하다고 보고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헌재는 해당 조항이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한계인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아 합헌이라고 결론 내렸다.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균형성이 모두 인정된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어린이집의 윤리성과 신뢰성을 높여 영유아를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보육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행정청으로 하여금 아동학대관련범죄로 처벌받은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의 자격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다"라고 밝혔다.
또 헌재는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는 6세 미만의 취학 전 아동인 영유아와 상시적으로 접촉하면서 긴밀한 생활관계를 형성하므로, 이들에 의한 아동학대관련범죄는 영유아의 신체·정서 발달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따라서 어린이집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지키고 영유아의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관련범죄로 처벌받은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의 자격을 취소해 보육현장에서 배제할 필요가 크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임의적 규정으로서 행정청이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가 저지른 아동학대관련범죄의 죄질과 선고된 형벌의 종류와 정도,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해 재량으로 자격을 취소할 수 있고, 그 재량권 행사의 당부는 법원에서 사후적으로 판단받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아동학대관련범죄를 저질렀다고 반드시 필요적으로 자격을 취소하도록 하지 않았고, 자격 취소 처분을 받은 뒤 그 적절성 여부를 사후적으로 다툴 여지도 있는 만큼 지나친 제한이 아니라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은 영유아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육하는 것으로서, 이로 인해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했던 사람이 그 자격을 취소당한 결과 자격 재교부 기한이 경과하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 근무하지 못하는 제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의 정도가 위 공익에 비해 더 중대하다고 할 수 없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행정청으로 하여금 아동학대관련범죄로 처벌을 받은 어린이집 원장 또는 보육교사의 자격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재가 처음 판단한 사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