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기자
애플 실리콘은 반도체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올 성공을 거뒀다. 아이폰은 스스로 만든 칩이 아니라 삼성이 만들어 준 칩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A시리즈라는 경쟁사 제품보다 높은 성능을 가진 반도체를 품고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다. 애플 PC도 자체 설계한 M 시리즈 칩을 통해 인텔이라는 거목에 거침없는 균열을 내고 있다. 그렇다면 애플이 반도체에서 성공만 거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애플의 과거 반도체 실패 사례는 애플에 도전하기 위한 기업이라면 되새겨 봄 직하다.
창고에서 시작한 애플은 애초부터 반도체를 스스로 조달할 수 없었다. 여느 PC 업체처럼 기존에 시장에서 사용하던 CPU를 사용할 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주도한 매킨토시(이하 맥) 컴퓨터 운영체제(OS)의 성능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는 반도체를 원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그의 욕심을 채워줄 수 없었다. 잡스가 원하는 수준의 반도체는 높은 성능이 필요했지만 '무어의 법칙'은 이를 불허했다.
IBM은 첫 PC를 선보이며 인텔의 8086 CPU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OS인 MS-DOS를 선택했다. 잡스는 절치부심하며 선보인 첫 맥컴퓨터에 모토로라의 68000을 CPU로 선택했다. 당시만 해도 모토로라의 칩이 인텔과 비교해 성능이 우수했다. 모토로라의 칩을 바탕으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컴퓨터인 맥이 작동했다.
애플은 모토로라의 칩에 의존했지만, 점차 인텔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IBM 계열 호환 PC들이 인텔 286, 386, 486을 거쳐 펜티엄으로 진화한데다 MS도 윈도(window) 운영체제를 선보이며 잡스가 탄생시킨 맥컴퓨터 GUI의 위상도 흔들렸다. 뿌리와 기둥이 모두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모토로라가 68000의 후속인 88000을 내놓았지만, 성큼성큼 앞서가는 인텔을 추격하기에 버거웠다. CPU의 성능 부진은 인텔 PC보다 비싸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맥이 처한 과제였다. 당연히 애플의 실적도 추락을 이어갔다. 전체 PC 시장의 80%를 장악한 인텔과 겨우 10% 수준인 애플에 칩을 공급하는 모토로라는 연구개발 투자의 규모부터 달랐다. 규모의 경제에서 모토로라는 인텔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잡스를 밀어내고 애플 지휘봉을 잡은 존 스컬리는 인텔과 MS에 수모를 당하던 기업들의 연합군을 구상했다. IBM과 모토로라였다. 이른바 AIM 동맹이다. 모토로라는 기존 애플 CPU를 공급했지만, IBM은 의외였다. 기업용 메인프레임과 유닉스 서버용 칩을 직접 만드는 IBM은 반도체 업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어쩌면 IBM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반도체 업체는 없었다. IBM은 직접 반도체도 제조했다. 그런 IBM이지만 PC용 칩이 없었다. IBM은 자신이 개발한 '파워' 아키텍처 서버용 칩을 PC용으로 개발하려고 했다. 다만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보다는 애플과의 연합을 원했다. 애플도 모토로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IBM이 필요했다. 애플은 기존 거래 관계를 고려해 모토로라에도 참여를 권했다.
스컬리는 철저히 애플만의 폐쇄 생태계를 원한 잡스와 달랐다. 펩시콜라 출신인 스컬리는 애플도 IBM PC와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더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애플이 제조하지 않은 호환 맥 컴퓨터를 추진했다. IBM도 MS와 인텔에 받은 수모를 갚아줄 무기가 필요했다. 지금 보면 생소한 애플과 IBM의 연합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1991년 10월 2일. 애플과 IBM, 모토로라가 한배를 탔다. IBM이 개발한 파워(POWER) 아키텍처를 모토로라가 반도체로 제작해 애플 맥 컴퓨터에 사용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지금으로 보면 마블 '어벤져스' 급의 연합이었다. 막강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반도체 기업 두 곳의 지원 속에 애플은 절대적 성능 우위를 지닌 CPU를 확보한 듯했다. 맥 OS를 흉내 낸 듯한 MS윈도와 파워PC에 비해 낮은 성능을 가진 인텔 진영을 꺾기 위한 참호가 파였다. 여기에 IBM은 OS/2라는 운영체제까지 내놓았다.
애플은 1994년부터 시작해 1997년에는 모든 PC에 파워PC 칩을 사용했다. 애플은 파워 매킨토시, 파워 북이라는 제품명을 선보이며 '파워'를 강조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려고 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파워PC는 잡스가 애플에서 축출됐을 때 탄생했다. 잡스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마침 애플이 모든 PC에 파워PC를 사용한 1년 후 잡스가 애플에 돌아왔다.
잡스는 복귀 직후 스컬리가 추진했던 맥 호환 기종 프로그램을 없앴다. 잡스는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잡스는 파워PC를 사용한 아이맥으로 도산 위기에 처한 애플을 기사회생시켰지만 파워PC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PC용 파워PC는 예상과 달리 성능 발전이 기대에 못 미쳤다.
더 큰 문제의 핵심은 발열이었다. 파워PC를 사용한 맥컴퓨터의 발열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발열이 많다 보니 애플은 파워PC G5 CPU로 노트북컴퓨터를 만들지 못했다. AIM 동맹의 딜레마였다.
이런 시점에 인텔은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코어2듀오' CPU를 애플에 제안했다. 인텔의 제안에 끌린 잡스는 2005년 미련 없이 파워PC를 포기했다.
15년 후 인텔은 IBM과 같은 실수를 한다. 인텔 CPU를 사용한 맥북은 열을 억제하지 못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CPU를 식히기 위해 쿨링팬이 맹렬하게 돌아 '공중부양'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인텔이 첨단 미세화 공정을 늦추며 CPU 발열이 심해지자 벌어진 일이다.
참지 못한 애플은 자체 개발한 M1을 선보이며 인텔 CPU를 퇴출한다. 이때는 잡스의 후계자 팀 쿡이 인텔을 버렸다. 어찌 보면 열관리를 하지 못하는 CPU는 퇴출당한다는 역사가 되풀이된 것이다.
만약 스컬리가 파워PC 대신 인텔 CPU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애플의 실적이 호전되고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애플은 없었을 수 있다. 파워PC의 실패가 잡스와 애플 재기의 주춧돌을 놓았다.
스컬리도 여러 차례 실수를 인정했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애플이 파워PC를 도입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파워PC 대신 인텔을 선택했어야 했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스컬리는 앤디 그로브 인텔 당시 최고경영자가 스컬리에게 직접 인텔 칩을 사용하라고 권유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파워PC와 애플 실리콘은 닮았지만 다른 결과를 냈다. 두 칩 모두 RISC에 기반한다. 그런데 파워PC는 실패했고 애플 실리콘은 대성공을 거뒀다.
애플 실리콘이 성공한 원인은 애플이 설계를 잘하기도 했지만, ARM과 TSMC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초 설계는 ARM이 해주고 칩 제작은 TSMC가 해주는 생태계는 파워PC 실패의 가장 큰 이유인 비용 문제를 해결했다. 어느 한쪽에 부담이 커지지 않는 구조였다. 마침 TSMC가 미세공정에서 인텔을 뛰어넘으며 승부의 추는 애플 쪽으로 더 기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