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정부가 배터리 등 차세대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2025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할 전망이다. 국내 생산 규모는 전체의 약 6.7%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유럽 등이 앞다퉈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규모 생산 공장을 지을만한 동기와 여건을 여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15일 제14차 비상 경제 민생 회의에서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 전략을 논의했다. 배터리 분야는 2030년 글로벌 1위를 목표로 걸고 국내에 60GWh 규모의 공장을 짓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장기·저리 대출, 보증 등에 올해 정책금융 5조3000억원을 투입하고 배터리 강소기업에 투자하는 민간펀드를 운영하기로 했다. 전고체 배터리 등 '초격차' 기술 선점을 위해서도 2030년까지 민·관 합계 2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목표다.
현재 국내 배터리 생산규모는 32GWh다. LG에너지솔루션이 '마더 팩토리(제품 개발과 제조의 중심이 되는 공장)'를 짓겠다며 충북 청주에 18GWh 규모의 '오창 에너지플랜트'를 가동 중이다. 이 공장은 2025년 이후 33GWh로 규모가 늘어난다. 삼성SDI는 울산 공장에서 9GWh규모(업계 추정)의 공장을 운영 중이고 SK온은 충남 서산에 5GWh 규모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배터리 3사 모두 한국을 연구개발 중심으로 꼽고 있고 '마더 팩토리' 전략을 진행중인 만큼 공장 추가 증설은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제시한 국내 60GWh 규모 배터리 생산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3사가 제시한 2025년 글로벌 생산 목표 합계인 873GWh에 비해서는 초라한 숫자다. 2025년 LG에너지솔루션은 540GWh, SK온은 220GWh, 삼성SDI는 113GWh 규모(씨티증권 추산)의 배터리를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1GWh당 전기차 1만5000대 생산이 가능한 것을 감안할때, 전기차 1300만대분 생산이 가능한 양이다. 60GWh는 90만대분이다. 정부가 목표대로 배터리 산업이 굴러가도 국내기업이 생산하는 배터리의 93.3%가 해외에서 만들어진다.
배터리는 해외에 다수의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다. 무거운 무게로 인해 전기차 수요가 많은 지역에 공장 건설이 필요한 것이다. 운송비를 아끼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배터리사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과 합작법인의 형태로 글로벌 거점 공장을 수십개 짓고 있다.
국내보다 해외투자가 앞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투자 여건 탓도 있다. 미국과 유럽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물론 배터리 생산 보조금, 30% 안팎의 설비투자 공제 등을 주는 등 배터리 기업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내 배터리사들은 해외 공장 건설에 수조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각국 정부로부터 받을 보조금·세액 공제 혜택도 조(兆)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내는 현재까지 전기차 보조금과 일부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대기업 8%·중소기업 15%)만 지원하는 상황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딱히 국내에 공장을 건설할만한 요인이 없다고 지적한다. 늦었지만 정부가 최근 국회에 '국가 첨단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법안(최대 25~35% 세액공제)'을 제출하고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만 배터리 공장을 지을 경우, 정작 국내 일자리는 크게 늘지 않고 산업 생태계 마저 해외에 뺏길 우려도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최근 내놓은 첨단산업 세액 공제 혜택 확대 방안은 환영할만하다"면서도 "전구체(양극재 중간 원료) 중국 의존도를 더욱 높인 계기가된 '전구체 관세 유예' 조치 등을 재검토하고 산업 생태계를 살릴 수 있는 정책 디테일을 챙겨야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