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부애리기자
# 수도권 직장인 오주환(32)씨는 연초 성과급 등으로 모은 목돈 1000여만원을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 중이다. 지난해였다면 고민하지 않고 시중은행 정기예금 상품에 가입했겠지만, 최근엔 수신금리가 답보상태를 이어가면서 ‘손해’가 아니냔 생각이 든 까닭이다. 오씨는 “(목돈을) 손에 쥐고 있다가 주식, 가상자산 시장으로 진입하는 게 나을지, 만기가 긴 상품에 넣어두는 게 나을지 고민 중”이라며 “보통의 정기예금 상품은 그다지 매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이 금융소비자에게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 지난해 빠르게 상승했던 수신금리가 기준금리(3.5%) 수준까지 내려오면서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반감된 까닭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 21일 기준 정기예금 신규가입금액은 19조864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36조7715억원) 대비론 반토막 수준이며, 신규가입금액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 10월(73조7642억원) 대비론 73.0%나 감소한 수치다. 가입건수 역시 40만5795건으로 정점(158만1782건) 대비 74.3%나 줄었다.
단 0.1%포인트를 위해 금융기관을 넘나들면서 정기예금 해지·가입을 거듭하던 금리 노마드족(族)의 이동이 잦아들면서 정기예금 중도해지금액과 건수 모두 급감 추세다. 4대 은행의 정기예금 중도해지금액은 지난해 10월 28조1441억원에서 이달 3조5703억원으로, 중도해지건수는 65만3814건에서 11만3492건으로 각기 87.3%, 82.6% 빠졌다.
정기예금 신규가입 및 중도해지 사례가 급감하고 있는 것은 '식은 밥'이 된 시중은행 수신금리의 영향이다. 지난해 11월 초순엔 5%대 초반까지 올랐던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최근 급락을 거듭하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지난 21일 기준 3.50%) 수준이 됐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4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단리) 상품의 기본금리는 2.60~3.70% 수준으로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 상품을 제외하면 기준금리를 밑돈다. 이들 상품은 최고우대금리를 적용해도 3.55~3.70%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고작 5~20bp(1bp=0.01%) 웃도는 수준이다.
수신금리가 찬밥처럼 식은 것은 은행의 조달상황이 개선된 데 따른 것이다. 우선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준거금리가 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AAA등급)는 지난 22일 기준 3.8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중 저점(3.564%) 보다는 오름세를 보이긴 했지만 지난해 11월 초순 한 때 5%를 넘었던 데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경색되면서 금융기관 간 수신유치 경쟁이 활발하게 벌어진 바 있다. 다만 당국의 개입으로 채권 시장이 안정화 되고 있고, 은행들도 차환목적의 은행채 발행을 재개하는 등 수신금리 인상의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
은행들의 자금수요가 시들해진 것도 영향을 줬단 평가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가계대출은 줄고 있고, 당국도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완화를 연장하면서 은행들로선 굳이 높은 이자를 주고 수신을 유치할 이유가 없는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각 시중은행으로선 금리 급등기에 유치한 수신 규모가 큰 상황에서 무리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기준금리나 채권시장에 큰 변동이 없다면 지난해와 같은 수신금리 인상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