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기름 붓던 임금…미·유럽 정점 찍고 하락세

美 비농업부문 근로자 시급 5.6%→4.4% 상승
유럽 주요국 임금 5.2%→4.9% ↑
긴축 중단 가까워졌나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선진국의 임금 인상률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발(發)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있다는 신호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긴축 중단이 가까워졌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비농업 부문 근로자의 평균 시급 상승률은 연율 기준으로 지난해 3월 5.6%에서 올 1월 4.4%로 낮아졌다. 지난달 물가상승률 6.4%에도 크게 못미친다. 미국의 경우 극심한 구인난, '완전고용' 수준의 역대 최저 실업률 등 고용시장이 여전히 견조하지만, 명목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중순부터 급속히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에 따르면 유럽 주요 6개국의 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5.2%에서 12월 4.9%로 둔화됐다. 지난해 9.2%에 달하는 유로존 인플레이션의 절반 수준이다.

이 같은 임금 인상률 하락은 물가 상승세 둔화와 무관치 않다. 에너지 가격 하락, 공급망 불안 완화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이 작년 여름과 가을 정점을 찍고 내려오면서 임금 상승 압력이 둔화됐다. 지난해 하반기 본격화된 경제 성장 위축과 이로 인한 해고 위협 증가 또한 근로자들이 큰 폭의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요인이 됐다. 임금이 물가를 올리고, 물가가 다시 임금을 올리는 악순환이 우려됐지만 임금발 인플레이션이 꺾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적으로 임금 인상 속도가 물가 상승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했다. WSJ는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조정 임금을 반영한 소비자 구매력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임금 인상률이 직전 2년(2020~2021년) 보다는 높아졌지만 주요국의 물가 상승률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1.8%)를 비롯해 미국(-0.6%), 캐나다(-2.1%), 독일(-2.6%), 영국(-2.9%), 일본(-0.3%), 호주(-2%)의 실질임금은 1년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임금 상승세가 물가를 쫓아가지 못하면서 주요국 경제 생산에서 노동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WSJ는 "임금이 물가를 올리고, 물가가 다시 임금을 밀어올리는 악순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며 "상당한 실업률 상승 없이도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각종 경제 지표가 엇갈리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의 주요 불안 요인 중 하나인 임금발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중단 시점에도 이목이 쏠린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4.5%로 올린 뒤 주요국 중 처음으로 금리인상 중단을 선언하면서, 임금인상 둔화를 피벗(통화정책 전환)의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티프 매컬럼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임금인상률이 현재 4~5%에서 정체되고 있다. 임금인상 리스크가 사라졌다"고 못박았다. WSJ는 "선진국의 임금 인상률이 정체되거나 하락한다는 소식은 중앙은행들에는 좋은 소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실질임금은 작년보다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 물가가 잡히고 있는 데다, 미국 경제의 '노랜딩(무착륙)'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등 심각한 경기침체가 없을 경우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어서다.

국제1팀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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