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되는 이별]②대화 빠진 정책…이산가족 상봉은 '제자리걸음'

北 호응 빠진 이산가족 정책…실효성 비판
'보내지 못한 영상편지'…17년간 60억 투입
"정치적 활용 그만, 대화 위해 특단의 노력"

편집자주한반도에서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년, 이산가족은 여전히 생이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기조가 오락가락하면서 부풀었던 기대감은 금세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전쟁통에 아버지의 손을 놓친 꼬마는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이 됐다. 반세기를 훌쩍 넘겨 한(恨) 맺힌 사연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민족 과제를 조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산가족 정책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하고 있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해온 탓에 더이상 민족 과제가 아닌 예산 낭비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대화 재개'를 위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5일 통일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제4차 남북 이산가족 교류촉진 기본계획(2023~2025년)을 발표하며 '전면적 교류'를 목표로 제시했다. 또 생존자 전체 명단을 북측과 교환하는 '전면적 생사 확인'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당장 남북 간의 대화 재개가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지만, 이산가족 실태조사에서 생사 확인(75.7%)에 가장 많은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생사 확인은 민간에서도 가능한 영역이다. 고향 방문(69.7%), 상봉(65.8%) 등 보다 직접적인 교류에 대한 수요도 비슷한 수준으로 뒤따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전면적 생사 확인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킨 문재인 정부도 달성하지 못한 과제로, 결국 북측의 호응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다.

'北 호응' 빠진 정책 추진…부치지 못하는 영상편지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 별관 이산가족민원실에 북측으로 전달되지 못한 이산가족 영상편지가 보관돼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통일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영상편지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부터 진행된 사업으로, 고령화에 따른 거동 불편자의 상봉을 대신하기 위해 시작됐다. 실제로 남북은 2007년 11월 제9차 남북 적십자회담을 통해 분기별 영상편지 교환에 합의하기도 했다.

문제는 실적이다. 지난해 말까지 제작된 이산가족 영상편지는 누적 2만5078편, 이 가운데 실제로 북측에 전달된 건 2008년 2월 40편의 시범 교환이 전부다. 나머지 2만5038편(99.8%)은 여태껏 '부치지 못한 편지'로 남아 있다. 통일부는 '기록'으로서 의미를 강조하지만, 당초 목적대로 '전달'되지 못한 영상편지에 투입된 예산이 60억8000만원에 달한다는 점은 물음표로 남았다.

쓰지도 못하는데 보수에만 수십억 드는 상봉장

이산가족 화상상봉장

화상상봉장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통일부는 6억8400만원을 들여 지방에 화상상봉장 7곳을 증설했다. 기존의 상봉장이 수도권 및 광역 단위에 집중된 점을 보완하고 이산가족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특히 이산가족 고령화와 코로나19 장기화를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당시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에 들어선 만큼 상봉장을 늘리기엔 부적절한 시점으로 평가됐다. 이미 북한은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장금철 당시 통일전선부장은 "앞으로 남조선 당국과 무슨 교류나 협력이란 있을 수 없다"고 밝힌 상태였다. 무엇보다 화상상봉은 우리 쪽에서 시설을 한껏 확충해도 북측의 시설이 담보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결국 지어놓기만 하고 쓰지 못하는 상봉장은 예산만 축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특히 2019년 4월에는 화상상봉 재개를 명목으로 기존 화상상봉장 13곳을 개·보수하는 데 27억8000만원이나 썼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내내 성사된 화상상봉은 1건도 없었다. 지금도 가동되지 않은 화상상봉장 20곳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해마다 최소 3700만원이 지출되고 있다.

이산가족 교류 예산 줄인 尹정부, 해결의지 있나

권영세 통일부 장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측의 호응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힘에 의한 평화'로 안보에 무게가 실리면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된 탓이다. 통일부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정세를 반영하듯, 이산가족 교류 예산을 전년 대비 10% 이상 삭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2023년도 예산안 예비심사검토보고서를 보면, 올해 통일부의 이산가족 교류지원 예산은 지난해 202억3000만원 대비 10.9% 감액된 180억2700만원으로 편성됐다. 내용별로 보면 이산가족 상봉행사 지원 사업 가운데 대면 상봉행사를 4회에서 3회로 줄이면서 19억5000만원이 감액됐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회담을 제안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북측과의 긴밀한 조율이나 접촉 없이 공개적인 제안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남북 간에 신뢰 회복이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데, 그간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된 게 문제"라며 "가장 인도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가 가장 정치화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북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사안으로 전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며 "비공개 물밑 작업을 포함,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특별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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