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2006년 5·31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민심의 한파가 얼마나 매서운지를 드러낸 선거였다. 한국 선거에서 다시는 나오기 어려운 기호 1번의 흑역사.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서울에서 얻은 선거 결과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참담한 성적표였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선거 벽보에 이름을 올린 서울시장, 구청장, 시의원 후보 전원이 낙선했다.
서울시장 선거부터 일방적인 승부였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61.1%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는 27.3% 득표율에 그쳤다.
원내 다수당에 주어지는 기호 1번의 선거 프리미엄은 작동하지 않았다. 서울 25개 구 선거에서 강 후보가 오 후보를 이긴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는 서울 구청장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 서울의 25개 구청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전승했다. 열린우리당 간판을 단 구청장 후보는 전원 낙선했다. 서울 구청장 선거 25대 0의 결과는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어떤 지방선거에서도 서울 구청장 25대 0의 결과는 없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구로구청장 후보가 34.9%의 득표율을 올리며 가장 선전했다. 대다수 후보는 득표율 30%도 올리지 못했다. 용산구청장 후보와 강남구청장 후보는 득표율 17~18% 수준에 머물렀다. 뭔가 해볼 틈도 없이 완패한 셈이다.
선거의 먹구름은 서울 시의원 선거로 이어졌다. 당시 서울에서는 96명의 지역구 시의원과 10명의 비례대표 시의원을 뽑았다. 비례대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당선자를 배분하는 구조다. 지역구 시의원은 개별 후보에 대한 시민 투표 결과에 따라 당락이 엇갈린다.
96개 지역구 시의원 전원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나온 96명 전원이 낙선한 셈이다. 이로써 서울시장(1명), 서울 구청장(25명), 서울 지역구 시의원(96명)에 이르기까지 열린우리당 후보 122명은 전원 낙선했다.
5·31 지방선거는 참여정부 중간 평가의 성격을 지닌 선거였다. 참담한 선거 결과가 나오자 집권 여당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국 정치사를 되짚어볼 때 수도권에서 특정 정당이 압승을 거둔 사례는 있다.
하지만 총선과 지방선거를 통틀어 2006년 서울 선거처럼 기호 1번이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 사례는 없다. 민심은 집권 여당에 사실상 낙제점을 안겨준 셈이다.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선거 다음 날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국민 질책을 무겁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 사퇴했다. 지방선거 참패는 거센 후폭풍으로 이어져 정치 구도를 흔들었다.
5·31 지방선거로 탄력을 받은 한나라당은 이듬해인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