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37조 MOU, 홍보보다 후속조치가 중요

[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지난 주말 경제계 화두는 단연 아랍에미리트(UAE)였다. 15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UAE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300억달러(약 37조원) 규모의 업무협약(MOU) 13건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원자력, 에너지, 투자, 방위산업 등 분야도 다양했다. MOU 서명식에는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가 총출동했다.

불과 두 달 전의 일이 떠오른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해 11월 17일 한국을 찾았을 때다. 당시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빈 살만 왕세자 방한을 계기로 하루 만에 23건에 달하는 MOU를 체결했다.

MOU마다 예정된 사업비는 '조(兆)' 단위였다. 양국 협력 강화로 총 사업비만 5000억달러(약 621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시티 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 주요 사업을 한국이 수주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졌다. 1박2일 일정에 불과했던 사우디 실권자의 방한으로 며칠간 한국이 들썩였던 이유다.

문제는 MOU의 실효성이다. MOU는 계약 의사를 가진 당사자 간 기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정식 계약 전 체결하는 문서다. 구체적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대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당사자 입장에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의미다. 전임 정부인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절 사우디와 체결한 MOU 중 본계약으로 이어진 MOU가 절반에 그쳤던 것도 그래서다.

그럼에도 정부는 마치 투자가 확정된 것처럼 홍보했다. 사우디는 물론 UAE도 MOU대로 한국에 '통 큰 투자'를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빈 살만 왕세자 방한 후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다는 점도 이 같은 확신에 힘을 보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에서 1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한·사우디 MOU의 직접적 결과물은 아니지만 양국 사이에 형성된 경제 협력 분위기가 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남은 건 다음 스텝이다. MOU 체결로 본계약은 가까워졌다. 하지만 MOU가 곧 '오일머니 잭팟'을 뜻하는 건 아니다. MOU가 수십조 원 규모의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려면 외교적 노력 등 정부의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MOU에 그친다면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이다. 윤 대통령 순방이 키운 국민의 기대가 언제든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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