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영기자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일본의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7% 뛰어 4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엔화 가치 하락과 에너지 가격 상승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 치솟는 물가가 아직 꺾이지 않으면서, 내년까지 주요국의 금리 인상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5일 니혼게이자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일본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이는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을 제외하고 석유류를 포함한 지수로, 1979년 2차 오일쇼크 영향으로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한 1981년 12월(4.0%)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식료품 가격은 6.8% 올랐고, 전기요금은 20.1%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연간(2022년 4월~2023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0%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1990년(3.3%) 이후 3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날 싱가포르도 11월 개인 교통·숙박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5.1%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10월에 이어 두 달 연속 5.1% 상승률을 유지했다. 블룸버그는 "싱가포르의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은 이전과 같은 수준"이라며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내년 근원물가 상승률이 3.5~4.5%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근원물가는 농산물이나 석유류, 식료품 및 에너지 등 계절적 요인 또는 일시적 충격에 의한 물가 변동분을 제외하고 산출한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주요국의 근원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아직 물가 정점은 오지 않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으로 이어져 내년 침체가 우려되는 글로벌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자체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33개 주요국 중 절반 이상인 55.5%의 국가에서 근원물가가 전월 대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가 오른 국가 비중(35.7%)을 크게 넘어서는 수준으로, 중앙은행의 물가 상승 평균 목표치인 2.0%를 크게 웃돈다. 우리나라도 11월 소비자물가는 5.0% 올라 상승세가 둔화했지만, 근원물가는 두 달 연속 4.8% 상승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2월(5.2%)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 매체는 "많은 국가에서 근원물가가 여전히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글로벌 물가 압력이 각국의 금리인상의 트리거가 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일본의 경우 10년 만에 통화 완화 기조를 수정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지난 20일 그간 0~0.25% 선으로 유지해 온 장기금리 변동 폭을 0.5%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심각한 엔저 현상과 물가 급등으로 사실상 금리인상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에선 BOJ가 다음 수순으로 내년 봄 마이너스 금리를 폐기,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닛케이는 "이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BOJ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며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철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