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돈기자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세금고지서랑 똑같이 생겨서 매번 헷갈리네요.”
연말연시만 되면 어김없이 볼 수 있던 적십자회비 지로용지가 올해에도 찾아왔다. 각종 논란으로 적십자사가 모금방식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대한적십자사는 12월부터 1월까지 두 달을 '집중 모금 기간'으로 정하고 각 세대에 지로용지를 발송했다. 개인은 1만원, 사업자는 3만원의 금액이 적힌 적십자회비 지로용지가 25~75세 모든 세대주에게 전달됐다. 문제는 일반 세금고지서와 유사한 형태인 탓에 많은 이들이 의무납부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지에는 일반 공과금 고지서와 마찬가지로 주소와 세대주 이름, 납부 기간이 명시돼 있다. 적십자사가 이런 모금 활동을 하는 건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에 따른 것으로, 적십자사는 각 지자체로부터 세대주 성명과 주소 등 개인정보를 확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는 세금고지서로 착각해 오인 납부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세계 192개국 적십자사 가운데 지로용지를 발송해 모금을 진행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더욱이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한 영세민에게까지 지로용지가 발송되고 있어 논란이 한층 불거지고 있다. 적십자 측은 '세대주 이름'과 '주소' 두 개의 개인정보를 받아 일괄 발송하고 있는데, 수급자 정보는 민감정보에 속해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로용지에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에게도 지로용지를 받으실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또한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무분별하게 발송돼 ‘회비’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점, 다른 기부 단체들은 하지 않는 통지서를 가정으로 발송하는 점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받고 있다.
각종 논란에 대한적십자사가 지로용지 모금방식을 차츰 폐지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무차별적인 발송이 이뤄지고 있다. 2019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박경서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3년 이내'에 지로용지 모금방식을 없애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3년이 지난 현재에도 모금방식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적십자 지로용지를 거절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대한적십자사 콜센터에 직접 연락해 거절 의사를 밝히면 된다.
대한적십자사는 2023년부터 과거 5년 동안 한 번이라도 납부한 사람에게만 지로용지를 발송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납부 이력이 없는 이들에게도 지로용지가 발송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차츰 발송 대상을 줄여나가 2027년부터는 지로용지를 통한 모금을 완전히 중단할 예정”이라며 “디지털 모금 등 여러 방식들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