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표기자
<i>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H임대주택 단지. 기본임대료 월 40만원 수준인 임대주택이지만, 이곳에는 2021년식 '포르쉐 카이엔 쿠페' 차량(차량가액 약 9100만원 상당)이 주차장을 드나든다. 임대료 약 35만 수준인 용인 기흥구의 S임대주택 단지에는 차량가액 1억원이 넘는 외제차(Mercedes-AMG S63 4Matic+L)가 버젓이 등록돼 있다. </i>
<i>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강서구 마곡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A씨는 최근 부천지역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에 기대를 걸었다. 임대료가 주변 시세 대비 훨씬 저렴한데다, 소득 등 까다로운 심사기준에도 걸리는 것이 전혀 없어 당첨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 보여서였다. 그러나 해당 단지는 수백 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당첨자 명단에 A씨의 이름은 없었다.</i>
정부가 서민 주거복지 일환으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에 고가의 외제차 등 입주 기준가액을 넘는 고가차량이 즐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임대주택 내에서 폭언·폭행 등 사건·사고가 급증하는 등 임대주택을 둘러싼 잡음도 계속되고 있다. 4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이 같은 '임대주택 요지경'을 고발하는 성토가 이어졌다.
공공임대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거친다. 그러나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와 주택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공공임대주택 기준가액 초과재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입주자 기준을 벗어나는 고가의 외제차 등을 보유한 곳이 264가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들 중 임대료를 체납한 사례도 있었다.
공공임대의 입주자 선정 기준은 △무주택 가구 △총자산 2억4200만 원(영구), 3억2500만 원(국민) △자동차가액 3557만 원 이하여야 가능하다. 그런데 LH로부터 제출받은 공공임대주택 817개 단지 60만9379가구 중 차량을 2대 이상 보유한 곳은 7만1233가구(11.7%) 입주기준을 초과한 고가차량 보유 가구는 264가구(0.04%)로 나타났다.
제네시스 EQ900 등의 고가의 국산차를 비롯해, 포르쉐, 페라리, 마세라티, 테슬라, 아우디 등 외제차를 보유한 곳도 143가구가 있었다. 차종으로는 BMW와 벤츠가 각각 48대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고가차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임대료를 연체한 사례도 종종 적발됐다. 고가 외제차를 보유한 한 가구가 22개월간 임대료를 연체한 사례도 있었다.
장 의원은 "공공임대주택은 서민의 주거복지 일환으로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가 차량을 보유한 입주자들이 발견되고 있다"며 "입주 기준가액을 초과한 부분에 대한 재계약 유예 불가 등 일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대주택을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사건·사고 건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민홍철 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총 310건에 불과했던 입주민 대 입주민, 입주민 대 단지 근로자 간 폭행·폭언·욕설 등 사건·사고 발생 건수는 지난해 501건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8개월 만에 벌써 지난해 기록을 뛰어넘는 509건의 사건·사고가 발생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관리 부실 외에 임대주택 공급부족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연평균 10만호 공급하겠다고 밝혔다"면서 "이는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로드맵상 13만호에서 3만호를 줄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예산도 5조7000억원(25.1%) 삭감했다"며 "공공임대주택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에 오히려 물량을 축소하는 것은 서민주거안정이라는 LH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LH가 공급하는 건설임대주택이 인구수 대비 가장 적은 곳은 주거비용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히는 서울로 나타났다. 같은 당 김병욱 의원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LH가 직접 지어 공급하는 서울 지역 건설임대의 경우 인구당 관리호수 비율이 0.3%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인구당 관리호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세종(3.1%·1만1686호)이고, 충북(2.9%· 4만6157호)이 뒤를 이었다.
LH와 국토부는 임대주택 운영·관리 수준을 높이고, 공급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겠다고 해명했다. LH는 "입주민·근로자 간 상호존중 및 공동체 생활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건·사고 예방을 위해 관계기관과 적극 협의하는 등 지속해서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가차량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가차량 소유자 재계약 기준 및 등록기준을 강화하고, 자동차 가액기준 상향 등으로 기준초과 고가차량은 감소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고가차량 보유자에 대해 재계약시 갱신 거절, 주차등록 제한 등을 엄격히 시행해 관리하겠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정부는 그간 공공임대주택 중심 공급에서 벗어나 공공임대주택과 공공분양주택을 함께 공급도록 공공주택 정책 기조를 전환해 전체 공공주택을 이전 정부보다 확대 공급할 계획"이라면서 "청년·무주택 가구 등의 내 집 마련 수요를 감안해 공공분양주택을 확대 공급하고,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이전 정부보다 부족하지 않도록 충분히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H 사장 직무대행인 이정관 부사장은 서울 지역 임대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LH가 직접 서울 및 도심 지역 임대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