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표기자
"그동안 관리해온 고객 장부, 사무실 내 모든 집기·비품 그대로 넘깁니다. 몸만 들어오시면 됩니다."
역대급 거래절벽에 상황에 빠져든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되살아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공인중개업계도 빙하기 속 칼바람이 불고 있다. 단순히 업장을 휴·폐업하는 수준을 넘어, 수년간 관리해온 고객 장부까지 넘겨주면서까지 사무실을 매도하겠다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6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에서 폐업한 공인중개업소는 994곳, 휴업한 업소는 72곳으로 집계됐다. 신규 개업한 공인중개업소는 906곳이었다. 새로 문을 연 곳보다 문을 닫은 곳이 더 많았던 셈이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광주광역시와 대전광역시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개업보다 휴·폐업이 많았다. 영업 중인 공인중개사 수도 지난달 11만8888명으로, 전달(11만8917명) 대비 감소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홈페이지에는 중개사무소를 양도(매매)한다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9월에만 매매 관련 게시글이 185건에 이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 평균 관련 게시글 등록 건수가 10~30건 수준이었던 점과 대비된다.
경기도 양주시의 B공인 대표는 "주택규제 및 금리 인상으로 어느 지역이든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며 "결국 중개사무소를 내놓게 됐다"고 했다. 최근 몇개월새 업장 매물이 늘어나면서 매도 조건도 매수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급변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B공인 대표는 "입주 때부터 있던 업장이라 동네주민들이 주요 고객인 곳"이라면서 "시설 및 집기가 모두 갖춰져 있고 매물장부와 고객장부도 모두 제공한다. 몸만 들어오면 즉시 영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검단신도시 인근 매물을 주로 담당한다는 인천광역시 서구의 C공인 대표도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 관리명단을 모두 제공하겠다"면서 "초보중개사도 즉시 영업이 가능한 장소"라고 강조했다.
사무실을 양도하지는 않고,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유오피스' 체제를 택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임차 공간을 같이 쓰면서 차임을 절반으로 분담하되, 영업은 각자 하는 식이다. 강남구 대치동의 D공인은 "교통요지에 있는 1층 부동산이지만 인터넷 발달로 인해 손님 모집이 어렵고 월세도 비싸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사무실만 같이 사용하면서 각자 상호로 등록하는 부동산합동사무소에 들어오실 분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공인중개업계의 이러한 환경 변화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부동산 거래절벽 때문으로 분석된다. 집 살 사람은 자취를 감추고, 팔 사람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거래되지 않는 매물만 늘어나고 있다. 26일 기준 서울 아파트의 경우, 매물(매매·전월세 포함) 수는 1년 새 7만6910건에서 12만805건으로 57% 늘었다. 경기는 같은 기간 9만2314건에서 19만2157건으로 108% 급증했다.
매수심리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주(80.2)보다 낮은 79.5를 기록하며 지수 80선이 무너졌다. 2019년 6월 넷째주(78.7) 이후 3년3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매매수급지수가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시장에 집을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분간 지속될 금리인상과 집값 하락, 거래절벽은 공인중개업계에 보다 더 혹독한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양천구 가양동의 E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거래가 멸종되면서 월세도 내기 어렵다는 업장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최근에는 권리금도 완전히 포기하면서 업장을 빨리 매도하려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