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재선 기회 연연하는 자영업자'…국회의원 수십명 '뼈를 때린' 강연

14일 박상훈 미래연구원 박사 강연 화제
"뼈 때리는 지적이었다"는 반응
'통치, 권위, 비전, 의제, 조직, 제도, 말' 7개 단어로 한국 정치 문제점 지적
"긴 노력 없이 변화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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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지역구 이익과 재선의 기회에 연연하는 유사 자영업자 내지 한시적 임기를 갖는 개방형 공무원""정당은? 의원 개인 가입자를 가진 프랜차이즈 업주 내지 정부 교부금에 의존하는 유사 공기업"

이상은 지난 14일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7명의 공동주최로 진행되는 ‘민주당 반성과 혁신 연속토론회’ 시즌2 첫 번째 공개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문에 담겼던 말들이다. 발제자로 나섰던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작정한 듯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적만큼이나 반응 역시 파격적이었다.

김종민 의원실 제공

"뼈 때리는 말씀이었다" (조응천 의원)

"승자와 패자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 싸움에 가담해야 하나, 아니면 거리를 둬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원래 정치를 생각했던 목표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김성주 의원)

"3당이 모두 비대위 체제였던 상황을 두고서 혀를 쯧쯧 찰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단어와 언어로 표현했다."(허영 의원)

"다음번 의원 워크숍에서 다 같이 듣는 방안을 추진해봐야겠다."(이원욱 의원)

수없이 많은 물음표로 채워진 발제가 마친 뒤 의원들은 저마다 시원한 심경을 토로했다. 대체로 정곡을 찔렸다는 느낌이었다. ‘작은 희망’이라도 찾아 가능성을 언급해왔던 박 박사가 한국 정치의 ‘절망’을 토로한 것에 대해 의원들은 충격을 받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무엇이 아침 7시 반 발제를 들었던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일까?

박 박사의 강의는 통치와 권위, 비전, 의제, 조직, 제도, 말 등 7개의 단어를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각각의 단어의 정의를 내린 뒤 우리의 정치가 그런 가치에 과연 부합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는 식이다. 정치의 7가기 기본 틀인 이 모든 것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였다.

박 박사는 실질적인 정치의 주요 영역이 정치인이 아닌 관료에 의회 결정되는 점 등을 지적하며 그는 "정치, 정치인이 통치의 권위를 갖지 못한 우리식 민주주의, 괜찮은 걸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그는 정치인에게 권위가 없는 이유에 대해 "정당이 권위가 없다는 뜻"이고 "정당이 권위가 없다는 것은 정당이 안정된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를 이끌고 정부를 주도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의 집합, 혹은 그에 따른 사회 기획’을 비전이라 정의한 박 박사는 정치인들이 그 비전을 위한 동기나 소명감에 이끌려 정치를 해왔는지 비판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48인 찬성 197인 반대 16인 기권35인으로 가결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한국 사회의 정치적 의제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이어졌다. "정당은 몰락했고, 비상한 혁신을 말하며 세상을 기만하는 떴다방 투기장이 되었고, 무례하고 파괴적인 팬덤 정치만 있는 것 아닌가? 정치도 통치도, 권위도, 비전도, 의제도 없이 여론과 팬덤을 좇아 방향 없이 부유하는 민주주의 아닌가?"라고 말이다. 그는 "선도국가 포용국가 혁신국가 같은 국가주의 담론은 있어도 어떤 사회나 공동체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담론은 없는 속에서 세계 몇 위 국가를 지향한들, 자살하고 사고로 죽고 늙어서 천대받고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저변 계층들의 소리 없는 절망은 오히려 더 고착되어 온 것 아닌가? 세금 깎아주고 개발 예산 더 투입하고 규제 완화하겠다는 것 말고, 우리가 직면한 경제, 사회, 공동체적 의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겠다는 체계적 정책 프로그램을 발전시킨 적이 있었냐"고 되물었다.

정당에 대해서도 되물었다. 박 박사는 "인구 대비 16.9%, 유권자 대비 20% 가까운 877만 명이 당원인 정당 정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정치 관여가 돈이 되고 사업이 된 우리 식 이상한 정치 참여 혹은 동원 양식의 문제, 당원은 세계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늘었는데, 왜 우리 정당들은 늘 분열하고 위기에 직면하고 비대위, 혁신위를 계속하게 되었냐"고 되물었다. 그는 "정당 정치의 아웃사이더들과 팬덤들에 의해 쉽게 포획되는 한국정치. 대체 우리 정당들은 자립적 기반이 있기나 한 걸까?"라며 "정당의 주인은 대체 누구이고, 책임 있는 지도부는 누구이며, 당의 문화와 전통은 다져지고 있을까?"라고 물었다.

특히 박 박사는 ‘말’이 제 역할을 잃은 정치를 개탄했다. 그는 "정치는 말로 하는 인간 행위"라면서 "말이 가치 있을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말로 먼저 ‘가능의 공간’을 여는 것에서 정치는 시작된다"면서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말 말고 무엇을 갖고 있었나? 말로 뜻을 모으고, 말로 동지를 모으고, 말로 조직을 만든 것 이상 그들의 정치 에너지에는 무엇이 있었나?"라고 되물었다.

반면 "(현재) 정치인들의 말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하고, 세상을 지치게 하는 것에 대해 왜 아무도 항의하는 정치인이 없냐"고 꼬집었다.

수많은 질문 끝에 박 박사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법과 그 길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정치의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는 비전을 갖고 그에 합당한 정책 의제를 체계화하고 민주주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조직하고 우리 현실에서 오래 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에 맞는 정치 언어를 발전시켜 사용하는 긴 노력 없이 변화는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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