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신당역 역무원 살해사건으로 여성을 보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 강화가 시급해졌다. 하지만 예산 증액은 기대에 못 미치고 스토킹으로부터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법은 국회에 잠들고 있다.
16일 여성가족부(여가부)는 2023년도 ‘권익 분야’에 예산 1372억원을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권익 분야 예산은 1352억원으로 전년 대비 1.5% 늘어난 규모다. 여가부의 권익 분야는 성폭력과 데이트폭력, 강력범죄 등에 노출된 여성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만든다. 여가부의 내년도 전체 예산은 1조5505억원으로 5.8% 증가하는데 이번 살인 사건과 관련된 예산은 소폭 늘어나는 데 그친 셈이다. 여가부가 폐지론에 휘말리면서 여성 보호 관련 사업 투자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의 여성 관련 범죄 수사 역량에 대한 투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도 경찰의 여성 관련 범죄 수사 역량은 47억원으로 올해 대비 약 38% 늘어난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 범죄 관련 112 신고 건수는 1만4509건으로 전년 대비 3.2배 증가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지난해 10월 시행됐지만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피해자보호법)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는 지난 4월 피해자보호법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논의를 다루느라 뒷전에 밀린 것이다. 이 법안대로라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체계 및 시설을 운영해야 한다. 아울러 사법경찰관리를 마련해 스토킹 신고 접수 시 곧바로 출동 및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했다. 피해자보호법이 있었다면 3년 동안 스토킹을 당한 신당역 사건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안타까움이 나오는 이유다.
예산 증액은 시원찮고 법안 통과는 지지부진한 가운데 비슷한 스토킹 살인 사건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경기 성남시에선 50대 남성이 신변보호 대상인 전 동거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가해자는 전 동거녀를 폭행한 후 만날 수 없게 되자 하루 두 차례 직장에 찾아가는 등 스토킹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슷한 시기 경기 안산시에서도 신변보호 받던 여성이 흉기를 휘두른 60대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 역시 스토킹으로 인해 입건된 바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스토킹 범죄의 경우 가해자가 처벌을 받기 전까지 피해자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놓인다"라며 "가해자에 적극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면 피해자 보호라도 두텁게 해야 하는데 그조차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