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미기자
[아시아경제 황수미 기자] 최근 일본에서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감을 드러낸 사례가 잇따라 발생해 논란이다. 혐한 감정을 가진 20대 일본인이 재일 한국인의 주요 거주지인 마을에 일부러 불을 지른 데 이어 한 대기업에서는 한국을 멸시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배포했다. 일각에선 차별적 동기에 따라 발생한 사건을 처벌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9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문서를 배포한 후지주택이 재일 한국인 A씨에게 132만엔(약 1281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하고, 문서 배포 금지도 함께 명령했다.
후지주택은 2013년부터 한국인이나 중국인 등을 '거짓말쟁이'로 모욕하는 내용 등이 담긴 잡지 기사나 인터넷 게시물을 사내에서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회사에 다니던 재일 한국인 A씨가 문서 배포를 멈춰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수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마이 미쓰오 후지주택 회장은 차별적 문서의 일부를 전 직원에게 배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직장 내에서 민족 차별적인 문서가 반복적으로 배포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이마이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1심에서 회사 측은 110만엔의 배상을 명령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혐한 문서를 돌려 지난해 11월 오사카고등재판소가 배상금을 132만엔으로 올렸다.
이후 최고재판소는 이날(9일) 후지주택의 차별적 문서 배포를 불법으로 최종 판단해 고등재판소 판결을 확정했다. 일본 내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이나 혐오 발언을 막기 위해 시행된 법률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해소법'이 규정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일본 내 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한 혐한 발언이나 행동은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단행된 개각에서는 자민당 아베파 소속의 혐한·극우 인사인 스기타 미오 의원이 청무 정무관이라는 요직에 임명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정치인은 수많은 성차별 발언을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부정한 인물로 알려졌다.
혐한 감정으로 인한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8월 재일 교포가 많이 사는 마을인 일본 교토부 우지시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이 있다.
당시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거주하던 20대 아리모토 쇼고는 혐한 감정으로 우토로 지구의 창고에 라이터로 불을 질러 주택 등 7동을 모두 태웠다. 특히 이 불로 일제 강점기 재일 조선인의 역사가 담긴 '우토로 평화기념관'에서 전시용으로 보관 중이던 자료 약 50점이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아리모토는 나고야시의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나 한국학교의 일부 건물을 훼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30일 방화 및 기물손괴 등의 혐의를 받는 아리모토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그는 재판에서 "한국인에게 적대감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차별적 동기에 따라 발생한 사건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동기를 형량에 감안할 근거가 일본 법률에는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16년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이 마련됐지만, 처벌 규정이 따로 없어 헤이트 스피치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일본 교토헤이트스피치대책위원회는 재일 교포 등을 대상으로 한 우익 집단의 헤이트 스피치와 증오 범죄 해소를 위한 시민 모임을 지난달 24일 개최하기도 했다.
황수미 기자 choko21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