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서울역 계단으로 돌아갈까봐 두렵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골목 안쪽에 자리한 원룸은 강수일씨(60)의 보금자리다. 그의 원룸은 두 사람밖에 못 눕지만 깨끗한 방과 화장실이 달려 있다. 전세금은 9550만원.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 주거 환경은 좋아졌다. 15년 동안의 노숙생활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이 방에서 자해 및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전력이 있다. 6년 전부터 강씨는 우울증 약과 불면증 약을 꾸준히 복용 중이다. 그는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며 "이 약들을 먹지 않으면 도저히 잠에 들 수 없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자해로 진료 받은 60대 이상 인구는 전년대비 30.8%증가한 1197명 이었다. 전체 자해 인구(3995명)의 30%, 연령대별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불면증 진료를 받은 60대 이상 인구도 지난해만 147만5159명에 이른다. 2020년 대비 12만명 가량 늘어났다. 전체 불면증 진료 인구(283만4785명)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70~79세의 주요우울장애 1년 유병률은 3.1%로 전연령층에서 가장 높았다. 1년 유병률은 지난 1년 동안 우울장애를 겪은 인구수를 말한다. 이는 1.5% 수준이던 2016년 대비 두 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노년기는 퇴직, 질병, 이혼·사별, 외로움, 소득감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동거가족이 없고 소득 및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사회경제적 고립에 따른 불안과 우울 등을 더 많이 느낀다. 이미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이고 노인 상대적 빈곤율(38.9%)은 OECD 평균(13.5%)의 3배에 이른다. 노인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노인 중 소득 수준이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사람의 비율을 의미한다. 줄곧 40%대를 유지하던 노인 상대적 빈곤율은 처음으로 2020년 30%대로 떨어졌다.
함경애 신라대 상담치료대학원 교수는 "노인의 자해는 만성적일 가능성이 큰 데도 이 문제로 병원에 간다는 것 자체를 노인들은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며 "경제적 빈곤에 빠진 노인의 경우 병원으로 더욱 향하기 힘들다. 현실은 통계치보다 훨씨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교수는 "결국 노인들에게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직접 봉사하거나 아이들 또는 반려동물 돌봄서비스 등에 참여한다면 사회에 기여한다고 느껴 우울감을 떨어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빈곤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약화로도 이어진다. 돈이 없으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당연히 빈곤 인구의 발굴도 어려워진다"면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노인들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