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곤기자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 후원을 받는 리브(LIV) 골프 개막전이 지난 12일 끝났다. 일각에서는 오일 머니를 등에 업은 대회로 '역대급 돈 잔치'라는 평가와 함께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PIF 규모는 약 600조 원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리브 대회 총상금은 약 321억 원이다. 골퍼 샬 슈워츨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61억 원을 벌었다. 24오버파로 꼴찌를 한 미국의 무명 골퍼도 상금으로 1억5천만 원을 챙겼다. 전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은 1,284억 원이 넘는 돈을 받고 LIV시리즈행을 택해 대회 전부터 화제가 됐다.
이렇다 보니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커미셔너(프로 스포츠의 품위.질서 유지를 위한 최고 책임자)는 13일(한국시간) 미국 CBS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리브 골프에 나서는 선수들은 PGA 투어에 나설 자격이 없다. 앞으로도 LIV 골프에 가입하는 선수들에게는 더 많은 징계가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PGA가 '리브 참여 선수 출전권 정지' 라는 총강수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역대급 상금을 자랑하는 리브 대회 앞에서 골퍼들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스타급 선수인 브라이슨 디섐보와 패트릭 리드도 천문학적 계약금을 받고 다음 대회부터 참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PGA가 중동의 오일 머니로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LIV 시리즈는 10월까지 총 8개 대회를 영국, 미국, 태국,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 열린다.
◆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오일 머니'…중동 석유 부자들, 왜 스포츠에 관심 보일까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오일 머니를 쏟아 붓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골프가 사우디의 국민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의문과 의아함은 더욱 짙어진다.
사우디가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 '다카르 랠리' 역시 2020년 사우디가 유치한 바 있다. 이를 두고 AFP통신은 사우디가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사우디의 실질적 지배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스포츠를 이용해 해외 관광객과 유치와 국내 소비를 진작 시켜, 석유에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다양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빈살만 왕세는 PIF를 앞세워 전 세계에 투자하고 있는 이른바 큰손이다.
다만 외신은 이런 화려한 스포츠 행사를 내세워 경기 침체나 청년 실업률 급증 등으로 국민이 동요하는 일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봤다. 여기에 현재 빈 살만 왕세자는 워싱턴포스트 소속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사건 배후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두고 최근 뉴욕타임스는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2018년 반(反)정부 언론인 살해와 예멘 내전 획책 등 악화된 국제사회 이미지 개선을 위해, 최근 수년간 초대형 스포츠 행사에 수조원의 오일 머니를 쏟아부으며 스포츠워싱 정점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사회운동가들 역시 사우디 지배층이 스포츠 행사를 주최해 인권탄압국이라는 오래된 이미지를 완화하는 '스포츠워싱'(sports washing)을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스포츠워싱은 개인이나 기업, 국가 등이 좋지 않은 여론이나 명성을 개선하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2015년 아제르바이잔이 국제 스포츠 행사를 공격적으로 유치하면서 사용되기 시작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석유 부국이지만 고문과 인권 탄압으로도 얼룩진 나라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 역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22년 월드컵 주최국인 카타르는 지금까지 월드컵 전용 구장을 짓는 데만 2천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또한 카타르 국부펀드 카타르스포츠인베스트먼트를 통해 2011년 프랑스 인기 축구클럽 파리 생제르맹 FC를 인수하기도 했다.
앞서 카타르는 월드컵 경기장 건설 등으로 2010년 이후 이주 노동자 650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각국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카팔라'(kafala)로도 악명 높다.
인권 탄압 논란이 있는 아랍에미리트 역시 대통령의 이복동생인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흐얀이 2008년 영국의 맨체스터 시티 FC를 3천700억원에 인수하며 당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돈으로 당신들 원하는 것 얻지 못해!" '스포츠 워싱' 정면 비판하는 세계적 선수들
사우디에서는 다카르 랠리 뿐만 아니라 과거 사우디에서 개최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던 여성 레슬링 경기, 2019년 친환경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E'와 테니스 경기, 현존하는 헤비급 최고 선수로 손꼽히는 앤서니 조슈아(영국)와 앤디 루이즈 주니어(멕시코) 권투 경기를 열어 전 세계인의 관심이 사우디에 집중됐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하면 중동의 석유 부자들이 오일 머니를 이용해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열지만, 그 이면에는 스포츠 워싱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꾸준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여론 속, 재산이 2조 원이 넘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리브의 1조 원 계약금 제안을 거부했고, 가장 인기 있는 프로 골퍼 가운데 한 명인 로리 매킬로이는 "돈으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진 못할 것"이라고 리브를 맹비난했다.
이렇다 보니 오일 머니와 어울리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각종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의 행보다.
알카티브 사우디 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9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메시가 홍해 연안 도시 제다의 킹 압둘라지즈 공항으로 입국한 사진을 올리며 "그의 사우디 방문을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고, 메시 역시 인스타그램에 홍해 위 요트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사우디 관광 당국의 자회사인 '비짓사우디'를 뜻하는 해시태그(#VisitSaudi)를 달았다.
이어 11일에는 사우디의 공주이자 관광부 차관인 무함마드 알 사우드도 트위터에 메시와 함께 있는 사진을 올리며 "메시와 그 친구들과 함께 역사적 도시인 제다 주변에서 훌륭한 시간을 보냈다"고 썼다. 이를 두고 12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사우디 당국의 홍보용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등장한 메시가 인권을 탄압해온 정권의 '얼굴'로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메시가 이번 제다 방문을 통해 언론인 살해부터 성 소수자·여권 운동가 탄압 등 각종 인권 착취 혐의를 받는 사우디와 연루된 셈이라고 지적하며, 사우디가 메시를 앞세워 자국 내 인권 상황에 대한 주목도를 흐리게 하려는 스포츠워싱을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2022년은 베이징으로 시작해 카타르로 끝나는 스포츠워싱의 해"라고 비판했다.
한편 스포츠워싱으로 인해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가 일어난다는 견해도 있다. 이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정보를 인위적으로 삭제 또는 검열하려는 시도로 인해, 오히려 그 정보가 더 널리 퍼지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반대 심리를 말한다. 예컨대 사우디에서의 리브 골프 대회 개최를 계기로, 어떤 인권 침해가 감춰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벤 선더랜드 BBC 스포츠 에디터는 "스포츠 워싱을 추구하는 국가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감추려 했던 것들이 주의를 끌게 되는 스트라이샌드 효과를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