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전자만 고려한 '맞춤약' 시대 열릴까 [임주형의 테크토크]

환자 유전자마다 다른 의약품 부작용
기존 의사 처방 만으론 한계
대안으로 나온 '정밀의학'
처방 전 유전체 정보 받아 맞춤약 제공
인간 DNA 분석하는 '시퀀서' 기술 관건
최근 20년간 비용 약 100배 떨어져
수년 안에 '수십만원대 시퀀싱' 기대감도

연구진이 유전체 검진용 샘플을 준비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모든 의약품에는 어느정도 부작용 위험이 있습니다. 경미한 증상부터 심각한 중증까지 다양한데, 가장 큰 문제는 복용하는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부작용이 다 달라진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백신 접종부터 평범한 의약 처방전에 이르기까지 의사의 꼼꼼한 체크가 필요합니다.

약에 따른 부작용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인간의 유전자에 있습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유전자 가운데 무엇이 특정 의약 물질에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의사가 약을 처방하기 전 모든 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전부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철저하게 환자의 몸에 최적화돼 부작용 걱정 없는 '맞춤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DNA…약효에도 영향 미쳐

유전자가 약효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다양하고, 때에 따라선 환자의 신체 특성에 따라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흔합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영국 약리학회·의사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처방하는 약은 전체 환자 중 단 30~50%의 사람들에게만 온전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전자는 인간이 복용하는 약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사진=연합뉴스

또 무려 99%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진통제·심장약·항우울제 등 특정 약물에 영향을 받는 유전적 변이를 최소 한 개 이상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약품은 일상적으로 처방됩니다. 만에 하나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기라도 하면, 환자의 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인종, 성별, 신체적 특질 등에 따라 인간은 다양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같은 다인종·다문화 국가들은 여러 나라 출신 환자들의 특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니 더욱 복잡한 문제입니다. 약을 처방하기 전 의사는 환자의 의료 관련 정보를 미리 접할 수 있겠지만, 문서화된 정보 만으로는 완벽한 판단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시퀀서로 DNA 미리 분석해 '맞춤약' 제공

만약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기 전,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떨까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 처방을 피하고, 약물의 복용 수준을 조절해 더욱 안전한 처방이 가능할 겁니다.

환자 개개인의 신체 특성에 따라 최적화한 진단과 처방법을 두고 의료계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라고 합니다. 마치 정교한 정밀 기계처럼 사람의 몸에 꼭 맞는 약물만 주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정밀의학을 가능케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필수 조건은 유전체 분석입니다. 환자의 유전 정보를 미리 알아야 그에 맞는 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유전체 분석은 'DNA 시퀀서'라는 특수한 장비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 사진은 세계 최대 DNA 시퀀서 제조업체 美 '일루미나' 시퀀서(위)와 휴대용 DNA 시퀀서 업체인 英 '옥스퍼드 나노포어' 시퀀서 / 사진=일루미나, 옥스퍼드 나노포어 홈페이지 캡처

현재 정밀의학이 가장 활성화된 분야는 암환자 진료입니다. 통상 항암제는 환자에 따라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의 몸에 맞춘 약을 정확히 처방해야만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유전체 분석은 'DNA 시퀀서'라는 장비로 시행하는데, 그동안 미국의 '일루미나', 중국 'BGI' 등 소수의 기업들이 제작해 왔습니다. 시퀀서들은 매우 비싸다 보니 대형 병원이나 글로벌 제약업체의 연구소에서나 감당할 수 있었고, 이렇다 보니 환자들도 서비스를 받기 힘들었습니다. 생전 희귀 췌장암을 앓았던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지난 2012년 유전체 분석 검사를 받는 데 지출한 돈은 한화 1억원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20년간 '100배' 떨어진 시퀀싱 가격

그러나 최근 의료계 일각에서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유전체 분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낙관론의 이유는 지난 수년간 극적으로 하락한 시퀀서 가격에 있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시퀀서 업계는 '차세대 시퀀서(NGS)'라는 새 기술이 등장하면서 보다 작고, 빠르고, 저렴한 장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일루미나 같은 극소수 기업들이 독점하던 시장도 NGS의 발전에 힘입으면서 '옥스퍼드 나노포어', '팩바이오' 등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출사표를 낸 상황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유전체 분석 1회 비용은 100배 가까이 떨어졌다. / 사진=미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 보고서 캡처

미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시퀀싱 가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21년까지 DNA 분석 1회 비용은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에서 1000달러(121만원) 안팎까지 무려 100배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지난 2020년부터 2년 가까이 지구촌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도 시퀀서 보편화에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변이 유전체를 분석하기 위해 각국 정부, 연구소 등에서 소형 시퀀서를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 안에 20만원대 혈액·타액 검사 희망" 낙관론도

시퀀서 기술의 발달이 계속해서 가속된다면, 앞으로 1년 안에 유전체 분석 비용이 수십만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옵니다.

영국 약리학회 소속인 무니르 피르모하메드 박사는 앞으로 국가 보건당국이 전 국민에게 유전체 검사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의학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라며 "우리는 환자에게 알맞은 약물을, 알맞은 양으로, 알맞은 시간에 투여함으로써 효과를 증대하고 증상과 병을 치료하며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학회 소속인 마크 컬필드 교수는 "내년이 되면 혈액이나 타액 검사를 약 100~150파운드(16~24만원) 안에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라며 "약물이 일으키는 반응을 예측함으로서 치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예측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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