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서홍관 '암 진단도구·신약 대부분 수입… 항암주권 강화해야'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인터뷰

암정복 위해선 치료 이전에
조기진단과 예방이 병행돼야

국내 암 생존·완치율 세계 최고
암 유발 가장 큰 원인은 흡연
한국인 암 사망자 1위가 폐암

치료·진단·예방 3박자 갖췄지만
해외 기술 넘는 신약 아직 없어
10년 뒤에는 신약이 나오도록
국가가 지원해 기회 받쳐줘야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이 지난달 23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대담=조인경 아시아경제 바이오헬스부 차장, 정리=이춘희 기자] "암의 3분의 1은 예방이 가능하고, 3분의 1은 조기 진단으로 완치가 가능하다. 나머지 3분의 1은 완치는 못하지만 완화의료를 통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나갈 수 있다."

215만명.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에서 조사된 국내에서 암을 진단받아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이들을 뜻하는 ‘암 유병자’의 숫자다. 국민 100명 중 4명꼴이다. 특히 2019년 한 해 새롭게 암을 발견한 환자만 25만5000명이다. 이 수치는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암 정복을 위해서는 치료를 잘하는 것을 넘어서서 빠른 조기 진단과 함께 암 예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암 예방의 날(3월21일)’을 맞아 지난달 23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립암센터 전경 (사진제공=국립암센터)

- 국내에서는 위암, 유방암, 대장암, 간암, 자궁경부암, 폐암 등에 대한 국가암검진이 이뤄진다. 효과가 있다고 보나.

▲국가암검진 제도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잘하고 있는 제도 중 하나다. 우리의 암 5년 생존율, 완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흔히들 생존율이 좋다고 하면 수술을 잘해서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검진을 통한 조기진단이 이뤄지면서 생존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예방·조기검진·치료의 3박자가 모두 맞아야 한다.

- 최근 암 환자가 늘어나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고들 말한다. 실제 암의 원인은 어떠한가.

▲ 암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이 암을 유발하는지 알고 이를 예방해야 한다. 암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은 담배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암의 30%는 흡연, 30%는 음식, 18%는 만성감염에 기인한다. 담배를 피우면 당연히 안 된다. 음식은 아직 어느 부분이 암을 유발하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고기를 태울 경우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생길 수 있고, 짜게 먹는 것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들 보고 있다. 또 B·C형 간염이 간암을 유발할 수 있고,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자궁암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B형 간염과 HPV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위암의 주요 원인으로 최근 분석되고 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도 없애도록 해야 한다.

- 음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 술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많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히드는 모두 1군 발암물질로 발암성이 확인된 것들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암센터 원장으로서 이를 많이 알리고 싶다. 건배사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혼자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건 자유이지만 같이 마시자고 하는 것은 담배처럼 발암물질을 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흡연으로 인해 유발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진 폐암의 경우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에서 처음으로 위암을 제치고 사실상 최다 발생 암이 됐다. 5년 생존율이 50%를 밑도는 등 위험도도 높다.

▲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가 암이다. 이 가운데에도 폐암의 높은 치명률 때문에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가장 많다. 우리나라는 세 달 동안 무료로 약값과 진료비를 내주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금연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해 금연을 해야 한다. 최근 많은 이들이 ‘덜 해롭다’는 이유로 담배를 전자담배로 대체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자담배 안에도 발암물질은 있다. 독성이 담배에 비해 줄어들기는 하지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 폐암 앞에 ‘사실상 최다 발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그 위에 갑상선암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잉 진단’이라는 주장을 이어오고 있는데.

▲ 검진 자체가 잘못됐다. 증상이 없는데도 초음파 검진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사실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암은 조기에 진단해서 치료하고 완치하자는 생각들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상선암은 다르다. ‘안 찾아도 되는 암’을 찾아내는 것이다. 갑상선암의 5년 생존율은 100%다. 걸리지 않은 사람의 생존율과 걸린 사람의 생존 확률이 같다는 뜻이다. 설사 증상이 있더라도 그 이후에 접근해도 되고, 생존율도 높다. 미국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에서 갑상선암 조기검진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한 결과 ‘D등급’을 내린 바 있다. 이득과 손실이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해로움이 많으니 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수준이다. 2014년에 ‘과다진단저지의사연대’까지 만들었던 이유다.

- 항암주권 차원 등에서도 관련한 신약과 치료기술 등의 국산화를 위한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나.

▲ 우리나라의 암 5년 생존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는 조기 진단을 잘할 뿐만 아니라 치료에 대해서도 국립암센터뿐 아니라 큰 병원을 중심으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도구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개발되고 있다. 어떠한 신기술이 해외 학회에서 발표되면 국내에 빠르게 도입되는 건 분명히 장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자체 기술을 개발할 때가 됐다고 본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데 언제까지 다른 나라가 개발한 것들만 따라갈 수는 없다고 본다.

물론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밑바닥부터 다져나가야 한다. 10년 뒤에 신약이 나올 수 있도록 오늘부터 투자해 나가야 한다. 킴리아, 키트루다 같은 고가 항암제는 결국 국부 유출이라는 점에서 항암주권의 문제이고, 동시에 환자의 개인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글로벌 제약사가 없어 아직 제약기업들의 힘이 약하다. 처음에는 돈이 낭비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해외도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신약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국가가 지원해 신약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국립암센터가 이와 관련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나.

▲ 항암신약신치료개발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제약기업과 벤처가 보유한 우수항암신약 후보물질을 국내외 기관과 연계해 초기 임상을 돕는 국가사업이다. 현재 임상 개발 과제 3건 및 기술이전 지원 과제 6건 등 유망한 항암 신약을 후속 개발 중이다. 미국의 국립암연구소(NCI)는 선도물질 개발부터 공익적 다기관 임상시험 조율,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암치료법 개발사업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희귀암 대상 항암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임상치료법 개발은 민간 영역의 관심이 미흡한 만큼 공공자금을 투여해 임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국립암센터는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가 전무한 희귀·난치암과 관련해 국내 제약사 및 바이오벤처들과 공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암 관련 빅데이터를 모으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특히 암은 유전성 암 질환도 있지만 발암물질에 노출되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전정보뿐 아니라 개인의 생활습관 정보, 임상 정보가 모두 필요하다. 지난해 국립암센터가 암데이터센터로 지정돼 관련한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러 병원에서 진료하면서 어떤 암 환자가 어떻게 진단되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유전체를 갖고 있는지 등을 모두 모으고 있다. 이 자료들을 모두 통합해 내면 대단한 연구 결과가 나올 것이다. 자료들은 국립암센터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이 특정되는 정보는 모두 없애고 국내 기업과 연구자들이 모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할 것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이 지난달 23일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 남은 2년가량 임기 동안 목표는 무엇인가.

▲ 국립암센터는 민간병원이 아닌 만큼 다른 의료기관처럼 암 치료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사립의료기관들이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암 예방’ 활동이다. 금연 정책은 물론이고 암 예방을 위한 식습관을 권장하고 발암물질인 술의 정체를 알리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소량의 음주도 다양한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려나가겠다.

그간 소홀했던 희귀난치암에 대한 연구 플랫폼을 만들고, 연구부터 치료 후 돌봄 제공까지 전주기적 관리를 통해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희귀난치암 극복 국민 희망 프로젝트’도 추진하려고 한다. 신약 개발을 위한 다양한 연구자원을 한 데로 연계·통합하는 개방형 통합플랫폼 구축 등도 절실하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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